[뉴스 인사이드] '부도나도 지급보증' 무기로 급팽창…위기 터지자 '괴물'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97년 첫 판매후 매년 2배씩 성장, 2007년 거래잔액 62조 달러
전세계 GDP총액 웃돌아
3자에게 제한없이 매도 가능, 거래규모ㆍ발행ㆍ매수자 불투명
서브프라임사태로 '정체' 드러나
전세계 GDP총액 웃돌아
3자에게 제한없이 매도 가능, 거래규모ㆍ발행ㆍ매수자 불투명
서브프라임사태로 '정체' 드러나
"월가의 탐욕은 신용부도스와프(CDS · Credit Default Swap)란 프랑켄슈타인을 키웠고,이 괴물은 금융시장을 삼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최근 미국 주가가 다소 회복되고 소비심리도 일부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금융시장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파생금융상품인 CDS는 2차 금융위기의 뇌관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첨단 금융공학이 만들어낸 CDS는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를 차례로 삼킨 뒤 세계 최대 보험사 AIG를 입에 문 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대형 금융사까지 먹잇감으로 노리고 있다. 은행 신용평가업체 리스크애널리틱스의 크리스토퍼 월런은 "CDS는 국제금융시장의 시한폭탄"이라고 말했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미국과 유럽의 15개 대형 금융사들이 '월가의 부실덩어리'인 AIG와 CDS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AIG가 도산할 경우 연쇄 파산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AIG가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을 초과해 마구잡이로 CDS를 판매해온 데 따른 결과다. AIG가 판매한 CDS는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BOA HSBC 도이체방크 소시에테제네랄(SG) 등 대형 은행들이 많이 사들였다.
◆월가의 탐욕이 키운 괴물
CDS는 채권을 발행한 기업이나 국가 등이 부도가 나더라도 원금을 상환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 금융파생상품이다. 매수자는 매도자에게 프리미엄(보험료)을 지급하고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했을 때 약정한 원금(보험금)을 보장받는 구조로 설계됐다. CDS 프리미엄은 사실상 부도 위험이 없는 미국 국채와의 금리 격차를 의미하기 때문에 프리미엄이라는 용어 대신 '스프레드'라는 말로 불리기도 한다.
CDS는 1997년 JP모건의 블라이드 마스터스 글로벌상품부문 대표가 탄생시켰다. 보험료 격인 수수료만 지급하면 어떤 대출금도 안전하게 만들어 주는 상품으로 알려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부도가 나지 않으면 수수료를 고스란히 챙길 수 있다는 사실에 금융사들은 눈이 멀었다.
CDS 프리미엄은 채권의 파산 위험에 대한 보험료 성격과 함께 그 자체로 거래가 되는 금융상품이기도 하다. 채권 발행회사의 신용 위험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게 되는데,통상 CDS 프리미엄이 10%포인트 이상이면 부도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00달러의 회사채를 보증받기 위해 10%에 해당하는 10달러의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산보호 신청설이 퍼진 제너럴모터스(GM)의 CDS 프리미엄은 이달 초 85%포인트까지 치솟기도 했다.
2005년 말 17조1000억달러였던 CDS 잔액은 2006년 말 34조4000억달러,2007년 말엔 62조2000억달러로 불어났다. 2007년 말 미국 회사채 발행잔액(4조달러)의 무려 15배 이상 규모로 전 세계 GDP(54조3000억달러)를 합친 것보다 큰 액수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한국의 CDS 거래잔액은 총 941억달러로 세계 10위 규모였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벗겨진 가면
CDS 거래는 채권 브로커를 통해 장외에서 은밀하게 이뤄졌다. 계약 체결 뒤 자유롭게 제3자에게 되팔 수 있기 때문에 특정 금융사의 거래 규모는 물론 누가 발행자이고,누가 인수자인지조차 불투명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로 기업 부도 위험이 늘어나자 CDS는 가면을 벗었다. 지난해 9월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부채는 1550억달러였지만 CDS 잔액은 무려 4000억달러에 달했다.
그 손실은 CDS 계약을 맺은 다른 금융사로 전이됐다. 손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CDS 계약이 오히려 손실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 셈이다. 그린스펀은 지난해 10월 미 하원 금융위기 규명 청문회에서 "CDS 상품을 규제하지 않았던 것은 부분적으로 내 잘못"이라고 뒤늦게 고백했다.
◆국제금융시장의 시한폭탄
CDS 계약만기는 통상 5년이어서 2011~2012년에 가서야 대부분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각국은 CDS의 잠재적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규제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청산거래소 설립을 통해 CDS란 괴물을 가둔다는 구상이 대표적이다.
청산거래소 설립은 CDS를 판 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청산거래소가 대신 보험금을 지급해 금융시스템 전체로 신용 불안이 확산되는 것을 막겠다는 조치다. 장외시장의 거래가 장내로 흡수돼 유동성이 높아지고 거래가 투명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애틀랜타의 온라인 거래소 인터컨티넨털익스체인지(ICE)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승인을 거쳐 지난 9일 CDS 중앙청산소인 'ICE US 트러스트'를 출범시켰다. ICE 외에 시카고상업거래소(CME)와 뉴욕증권거래소(NYSE)등도 CDS 청산소 설립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청산소는 거래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높일 뿐 채권의 부도 위험 자체를 해소해 주지는 못한다. '파산보호 신청설'이 돌고 있는 GM이 실제로 파산할 경우 금융권의 CDS 손실규모는 600억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자동차 '빅3'구제금융 규모(134억달러)의 4배가 넘는 액수다. 경제가 좋아져서 기업의 부도 위험이 줄어들지 않는 한 CDS발(發) 경제위기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