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는 어느 곳보다 힘의 논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무대다. 미국을 비롯한 몇몇 강대국들이 국제관계의 흐름을 좌우해온 것이 현실이다. 국가간 자유무역과 공정한 경쟁을 지향한다지만 경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힘의 원칙대로만 움직이게 되면 결과는 충돌 아니면 복종,불안정한 타협으로 귀결되기 쉽다. 대립의 극단적 결과는 공격과 전쟁이었고,힘의 균형이 없다면 불평등 관계나 지배로 매듭지어진 것이 어떻게 보면 인류의 역사였다.

이런 냉엄한 현실 때문에 국제기구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는지 모른다. 완충지대를 만들고,이성적 판단에 따르게 하고,힘의 논리 대신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인류가 공존하면서 더불어 발전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이 길이 궁극적으로 강대국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게 온갖 분쟁으로 얼룩진 인간역사의 가르침일 수 있다. 그러면서도 국제기구 또한 강대국에서 더 많은 인사들을 내보내니,이 역시 국력의 크기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보는게 맞다. 국제기구에 실질적 권한이나 힘이 있네 없네 하는 담론이 늘 반복되긴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결코 작지않다. 현실적으로 영향력도 크다.

엊그제 송상현 전서울대 교수가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에서 이 기관을 대표하는 소장에 올랐다. 의미있는 소식이다. 백진현 서울대 교수가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에 선임된 지 일주일 만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표직을 무난히 수행중이고,작고한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처럼 이미 국제사회의 큰 별로 각인된 이들도 있다. 국제기구에서 의미있는 중책을 맡은 한국인들이 이렇듯 늘어난다는 점에서 뿌듯하고,든든하기도 하다.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인사들이 이들 명사들 뿐이겠는가. 일상적인 경제활동에서부터 지구촌 오지의 봉사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내지 않고 소리없이 공헌하는 사람들도 적지않다. 인류의 평화 · 번영이라면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직책의 경중이 문제될 순 없다. 앞서 빛나는 수훈을 거둔 국군의 다산 · 상록수 · 동명 · 자이툰 부대에다 어제 출발한 청해부대까지 모두 음으로 양으로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우리의 일꾼들이다. 국력이 커지는 만큼 국제사회의 기여도 많아져야 하고,그래야 국가발전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아야 할 일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