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15일.역사는 이날을 '노아의 방주'에 비견되는 대재앙의 서곡이 울린 날로 기억할 것이다. 이날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메릴린치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되면서 금융위기 쓰나미가 몰아닥쳤기 때문이다. 금융위기가 시작된지 벌써 6개월이 흘렀다. 쓰나미는 아직도 큰 세력을 유지하면서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와 S&P500 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25%가량 빠지며 각각 12년 및 13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으며 국내 증시에서는 6개월간 216조원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혼돈의 6개월

금융위기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은 주식시장이다. 다우지수는 리먼브러더스가 몰락한 지 약 20일 만인 지난해 10월6일 10,000선이 무너진 데 이어 날개없는 추락을 하면서 6500대로 주저앉았다. 유럽 주요 증시도 추락세를 이어가면서 범유럽 다우존스스톡스600 지수도 12년 만의 최저치를 맴돌고 있고 일본의 닛케이 평균주가도 26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국내 코스피지수도 금융위기 파도를 피해갈 수 없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인 지난해 9월12일 1477.92를 찍었던 코스피지수는 추락을 거듭해 10월24일 938.75,같은 달 27일에는 장중 892.16까지 내려갔다.

외국인들의 순매수에 힘입어 지난해 12월8일 1105.05,올해 1월7일에는 1228.17로 마감한 코스피지수는 지난달 동유럽 국가들로 인한 2차 금융위기 우려와 미국 정부의 상업은행 부실 처리 문제를 둘러싼 불안으로 2월20일부터 다시 1000선대로 주저앉은 바 있다.

지난 6개월간 코스피지수는 27.48%나 곤두박질쳤다. 국내 증시에서 216조원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개인 · 기관 등 국내 투자자들의 보유 주식에서만 139조원이 증발했다.

금융위기는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달러화 수요를 촉발시켜 달러 기근 현상을 불러오고 있다. 원 · 달러 환율이 고공 행진을 벌인 것도 이런 이유다.

지난해 9월 중순 달러당 1100원 안팎에 머물던 환율은 리먼 파산 신청 직후인 9월16일 1160원으로 급등한 데 이어 10월28일 1467원 선으로 치솟았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을 계기로 10월30일 1250원으로 하락했지만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자 11월24일 1513원으로 급등하면서 10년여 만에 1500원대로 올라섰다. 당국의 개입으로 연말 1250원대로 떨어졌으나 올 들어 다시 상승폭을 확대하면서 지난 6일 장중 1597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투자 성향 변화

사상 최악의 금융위기는 국내 투자자들의 성향을 변화시켰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재테크의 꽃'이라 불렸던 펀드가 이제는 원망의 대상이 됐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펀드의 1년 평균 수익률은 리먼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인 작년 9월12일 -20.80%에서 이달 초 -34.57%로,해외 주식형 펀드는 -24.47%에서 -47.23%로 악화일로를 걸었다. 금융위기가 한창 고조된 시점이던 작년 10월27일에는 국내와 해외 주식형의 1년 평균 수익률이 각각 -53.20%,-58.54%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1년 평균 수익률이 플러스(+)를 기록 중인 펀드는 거의 없고,해외 펀드 수탁액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펀드는 -47.99%로 반토막난 상태다. 동유럽 위기까지 겹쳐 경제난이 가중된 러시아 펀드는 -79.76%,유럽 신흥국 펀드는 -67.51%로 추락했다.

이에 따라 주식형 펀드 순자산 총액은 2007년 8월 100조원을 돌파한 지 13개월 만인 작년 10월 100조원 밑으로 떨어지는 등 6개월 새 32조9820억원이 줄어들면서 현재는 70조원대에 머물고 있다. 그 사이 환매로 빠져 나간 자금 2조2975억원을 감안하면 주식형 펀드에서 30조6844억원의 평가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적립식 펀드 계좌수도 7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으며 자금 유입보다 유출이 많은 추세여서 펀드런(펀드 대량 환매)에 대한 우려도 가시지 않고 있다.

대신 안전자산이나 단기 운용 자금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머니마켓펀드(MMF)에는 지난달에만 15조원이 넘는 돈이 몰리며 최근 가장 각광받는 재테크 수단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MMF 수신액은 지난해 말보다 16% 이상 증가했다. MMF는 CP(기업어음)나 CD(양도성 예금증서) 등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만기 30일 이내 초단기 금융상품으로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하며 하루만 돈을 넣어도 운용 실적에 따라 이익금을 받을 수 있다.

한동안 잊혀졌던 은행 정기 예 · 적금도 재테크 수단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은행들은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유동성 확보를 위해 1년 만기 정기예금에 연 7%가 넘는 금리를 주며 시중자금을 끌어모았다. 이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꾸준히 인하해 예금 금리가 연 3%대로 떨어졌지만 마땅히 돈을 넣어둘 때가 없는 상황에서 은행 수신액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수신액은 921조5000억원으로 1월에 비해 20조6000억원 늘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