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를 눈앞에 뒀던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66)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27세에 중의원에 당선된 뒤 온갖 풍파를 넘어 총리를 거머쥘 절호의 기회를 맞고도 막판에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낙마 위기에 몰렸다. 불법 정치자금 의혹은 일본 정계의 '풍운아'라는 오자와 대표의 면모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란 지적이다.

오자와 대표의 40년 정치인생은 말그대로 영욕의 세월이었다. 13회 당선 관록의 오자와 대표는 도쿄도 출신으로 게이오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니혼대학 대학원 재학 시절 젊은 나이에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정계에 입문한 오자와는 1970~1980년대 일본을 주물렀던 실력자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총애를 받아 '자민당의 황태자'로 불렸다. 당시 자민당 주류에서 활동하며 당 총무국장,중의원 운영위원장,국가공안위원장,당 간사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총리를 향한 일종의 정치 수업이란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그러나 1993년 미야자와 내각이 해산되면서 자민당 내 추종 세력들을 이끌고 그는 과감히 탈당해 신생당과 신진당 자유당을 창당하거나 당내 핵심 역할을 맡는 변신을 꾀한다. 1998년 결성된 자유당 당수 시절엔 당의 지지층이 약화되면서 독자 노선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때문에 2003년 간 나오토 민주당 대표와 손잡고 정식으로 민주당과 합당을 선언하면서 당 대표 대행에 취임한다.

그후 2006년 4월 중의원 총선을 앞둔 당 대표 선거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현재 민주당 간사장을 큰 표 차이로 따돌리고 당 대표에 선출된다.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둬 민주당을 참의원의 제1당으로 부상시켰다. 그때부터 그의 카리스마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하면서 민주당 내 절대 구심점으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최근 터진 불법 정치자금 파문은 그를 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리며,당 안팎에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과거에도 위기는 있었지만 이번은 성격이 좀 다르다는 게 정계의 분석이다. '선거의 귀재'라는 별명처럼 정치자금 모금에 능한 이미지가 차기 총리를 향한 중의원 선거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내에서조차 "민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 교체에 성공하려면 오자와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오자와 대표는 여전히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그는 이달 초 자신의 자금관리 비서가 검찰에 체포되자 기자회견을 열어 "중의원 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 이례적인 수사"라며 "정치적 · 법률적으로도 불공정한 검찰 권력 행사라는 느낌"이라며 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오자와 대표에게 불리한 증거나 진술들이 속속 나오면서 그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정치행보도 이제 끝이 보이는 것 아니냐는 게 일본 정가의 시각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