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5% 룰'의 덫에 걸렸다. 5% 룰은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국민연금 등 연기금에 주식 등을 5% 이상 보유 · 취득하거나 추가로 1% 이상 변동시킬 경우 다음달 10일까지 금융위원회와 거래소에 보고토록 한 것.이 룰이 시행되면서 엉뚱한 부작용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사고 파는 것을 매매 타이밍으로 잡는 추종매매가 대표적이다. 코스닥 상장사 폴리플러스는 국민연금이 9.46%를 보유중이라고 보고한 지난 2일 직전 이틀간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국민연금이 대량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돈 것이 결정적이었다. 폴리플러스는 그후에도 5750원에서 6530원으로 15%가량 더 올랐지만 국민연금이 1.43%를 팔았다고 보고한 6일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13일까지 15%가량 급락했다. 국민연금의 매매를 투자자들이 따라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부작용은 추종매매만이 아니다. 국민연금이 5% 이상 보유한 종목들을 가진 기관이나 외국인은 이제 느긋하게 매매 전략을 짤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주가 급락이 우려돼 대량으로 매도하지 못했지만 국민연금이 보유한 종목이라면 이런 걱정을 덜 수 있다. 수익률 관리를 해야하는 국민연금이 매도 물량을 받아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또 국민연금이 보고 의무가 더 까다로운 10% 이상 보유 종목의 지분율을 최근 10% 이하로 낮춘 뒤 영리한 투자자들은 국민연금 지분이 10%에 근접한 종목들을 투자 우선 순위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보고 의무에 부담을 느낀 국민연금이 추가 매수를 해 지분율 10%를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결국 자통법 시행으로 국민연금은 매번 자신의 패를 보여주고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은 처지가 됐다. 매매 동향이 모두 노출되다 보니 '한번 사들이면 일단 길게 들고 간다'는 국민연금의 장기투자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기가 힘들게 된 셈이다.

'5% 룰'의 취지는 적대적 M&A(인수 · 합병) 세력이 대주주 몰래 지분을 대량 매입해 경영권을 위협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단순투자만 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지분이 아무리 많아도 경영권 행사는 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에 다른 기관들과 똑같은 잣대로 '5% 룰'을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