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팀 = 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2개월여 만에 재개되면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건설.조선사에 대한 1차 구조조정이 미진했다는 지적을 받는 가운데 채권은행들이 이들 업종의 2차 신용위험 평가에 착수한 데 이어 이번 주부터는 44개 대그룹의 재무구조 평가에 나서기 때문이다.

해운업은 다음 달부터 구조조정의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재계가 기업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에 맡길 것을 요구하는 등 반발하고 있어 정부와 채권단의 의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 44개 그룹 평가.

.부채비율이 잣대
15일 금융당국과 금융업계에 따르면 채권은행들은 지난주 44개 그룹에 외부감사인의 감사를 받은 2008 회계연도 결산 재무제표 등의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채권단은 이들 그룹이 이번 주부터 자료를 내는 대로 평가를 시작해 4월 말까지 끝낼 계획이다.

은행들은 부채비율과 이자보상배율, 총자산회전율, 매출액영업이익률 등 4가지를 평가하되 부채비율을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기로 했다.

부채비율에 따라 합격을 받을 수 있는 종합점수 기준이 달라진다.

예컨대 부채비율이 300% 이상인 대기업은 종합점수를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 받아야 합격하는 반면 부채비율이 150% 미만인 곳은 40점만 받아도 합격할 수 있다.

국내외 경기가 빠르게 하강하면서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지나친 차입에 의존하고 있을 경우 외부충격에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부채비율이 높을수록 종합점수를 많이 받아야 합격할 수 있다"며 "불합격 판정을 받으면 자산 매각이나 계열사 정리 등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작년 9월 말 기준 재무제표를 갖고 지난 2월 약식 평가를 했을 때 5~6개 그룹이 불합격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4분기부터 경기 침체가 가속한 것을 감안할 때 이번에 연간 결산실적으로 정식 평가를 하면 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는 그룹은 지난해 6개에서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 해운업 구조조정..용선비중이 관건
올해 들어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는 해운업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 작업은 4월에 시작된다.

채권은행들은 내달 초까지 해운업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 기준을 마련해 금융권의 신용공여액이 500억 원 이상 37개사를 먼저 평가하고 나머지 140개사에 대해서는 6월 말까지 옥석을 가린다.

이번 평가 결과, B등급(일시적 자금 부족 기업)에는 자금이 지원된다.

C등급(부실 징후기업)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고 D등급(부실기업)은 퇴출된다.

해운사의 경우 용선 비중과 미지급금 규모, 선박의 가압류 등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특히 보유 선박 가운데 용선(빌린 배) 비중이 100%이면서 재무구조가 허약한 곳은 C나 D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채권단 관계자는 "종합점수 60점 미만을 받은 해운사는 워크아웃 대상이 되고 45점 미만은 D등급을 받게 된다"며 "용선이나 대선(빌려준 배) 비중이 높고 재무구조가 나쁜 업체는 퇴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상위 2~3개 해운사가 C나 D등급을 받고 사실상 정상적인 영업을 못하는 하위 10~20개사가 인수.합병(M&A) 등 강제 구조조정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채권단은 시공능력 101~300위권의 70개 중소 건설사와 4개 소형 조선사에 대한 평가작업을 하고 있으며 오는 24일까지 구조조정 대상을 확정할 계획이다.

새로운 평가 기준에 따라 전체 대출금 중 은행 대출금이 90% 이상인 업체는 B등급 이상을 받을 수 있으나 다른 금융권에 부채가 많은 기업은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이번 평가 대상의 30% 정도가 C등급 이하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옥석가리기 제대로 될까
금융권에서는 채권단 주도의 기업 옥석 가리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기업 부실이 표면화되지 않고 잠재된 상황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면 실업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채권단도 과감한 기업 퇴출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건설.조선사에 대한 1차 구조조정에서 확인됐듯이 일시적 자금난에 처한 기업이나 부실징후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놓고 이해관계가 얽히고 있다.

이 때문에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말로는 구조조정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강한 의지를 가졌는지 의문"이라며 "채권단 내에서도 구조조정의 총대를 적극적으로 메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정부에 "채권금융기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며 "자발적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투자 확대의 조건으로 중소기업처럼 대기업 대출의 만기 연장을 요구하는 등 재계는 구조조정보다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따라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들과의 갈등도 예상되기 때문에 정부와 채권단의 구조조정 의지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정부의 공적자금 조성 등의 정책방향은 긍정적이나 기금의 사용처가 기업구조조정 촉진보다 실물경제 지원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