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훈남이 웃으며 바라보면 버터처럼 심장이 녹는 그 기분을 아시는지? 난 숍을 볼 때 그렇다. 아니 더 황홀하다. 남자는 숍만큼 날 공주 대접을 안해준다. 맘에 안들면 교환할 수도 없다. 그러나 쇼윈도 속엔 딴 세상이 있다. 여자가 원하는 모든 게 완벽하게 갖춰진 꿈의 세계…."

영국 작가 소피 킨셀라의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로맨틱코미디 '쇼퍼홀릭'의 도입부 내레이션은 쇼핑 중독자들에게 나타나는 '뷰캐넌 신드롬'을 대변해준다.

'뷰캐넌 신드롬'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갯츠비'에 등장하는 데이지 뷰캐넌이 아름다운 셔츠들을 보고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린 장면에서 비롯된 말로 명품을 보고 황홀경에 빠지는 증후군을 일컫는다.

속칭 '된장녀'와 '신상녀'의 심리를 꿰뚫는 대사와 에피소드,눈부신 명품들의 향연이 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잡지사 여기자 레베카 블룸우드(아일라 피셔)는 카드 빚에 시달리면서도 마크 제이콥스의 속옷을 구입한다.

속옷은 여자의 자존심이라고 되뇌면서.쇼핑을 자제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얼음 속에 넣어 냉동고에 보관하지만 이내 세일 전단에 현혹돼 명품 하이힐로 얼음을 깬다.

"쇼핑을 하면 살아있는 것 같죠.환한 불이 켜지죠.하지만 곧 꺼져요. 그래서 또 쇼핑을 해요. "

레베카는 자신의 쇼핑 경험을 토대로 알뜰 소비에 대한 칼럼을 쓰면서 스타기자로 부상한다. 멋진 직장 상사(휴 댄시)와 사랑에도 빠진다.

그러나 이것은 모래성과 같다.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시종 거짓말을 둘러대며 살아야 하니까. 그마저도 잠시,마침내 직장과 사랑을 모두 잃는 파산 위기에 직면한다.

영화는 쇼핑에 대한 욕망이 허영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자아실현을 소비로 대체하려는 그릇된 태도라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허영을 상징하는 레베카와 진실을 대변하는 직장 상사의 뚜렷한 대비를 통해 드러난다.

직장 상사는 명문가 출신이지만 검소하게 살면서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의 가치관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실한 사랑이란 깨질 위기의 연인들에게 구원의 빛을 던진다. 26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