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관련 제조업체인 A사엔 요즘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구두가 닳도록 뛰어야 할 고참 영업사원들이 매일 사내에 죽치고 있다.

물론 이유는 있다. 나가봐야 만날 사람이 없다는 거다. 조업 단축 등으로 제품을 사주는 회사가 줄어들었단다. 말이 되는가? 영업사원이 돌아다니지 않으면 그 회사엔 희망이 없다.

경영자라면 어찌해야 할까? 경기가 좋을 때면 경영자는 회사를 지키는 게 옳을지 모른다. 숫자 돌아가는 것도 봐야 하고 인재관리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 영업은 담당 직원들이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 논과 밭만 잘 관리해 가을에 결실을 거두는 농민이 돼도 좋다는 말이다.

그러나 불황기에는 경영자도 바깥으로 나다녀야 한다. 들판 곡식이 다 사라지는 판에 가만 앉아 있어서는 좋은 날이 결코 오지 않는다. 불황기의 경영자는 사냥꾼이 돼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 빠른 디지털 시대를 맞아 정착하지 않고 끝없이 움직이는 노마드(nomad · 유목민)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다. "성을 쌓는자 망할 것"이라는 칭기즈칸의 말도 자주 인용한다. 변화에 뒤처지지 말고 그 물결을 타고 가능하면 선도하라는 얘기인데,그 노마드 정신도 요즘 같은 불황엔 어쩌면 한가해 보인다. '오늘 먹을 것을 당장 오늘 구하는' 사냥이 아니면 살 길이 없다.

들판에 엄청난 홍수가 지나갔다. 애써 일궜던 논도 밭도 다 떠내려갔다. 산과 들에 짐승이 남아있을리 만무하지만,그래도 우리는 오늘 먹을거리를 마련해야 한다. 동네 뒷산에 짐승들이 안 보이면 저 산 너머까지라도 갔다와야 한다. 그게 원시시대부터 아주 오랫동안 우리에게 남아있는 사냥 DNA다.

전력을 다해 뛰어 가젤 한 마리를 물어와 새끼들을 먹이는 치타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기진맥진한 어미 치타는 새끼를 위해 사냥의 의무를 다했지만,혹시 모를 다른 포식자를 경계하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것이 생존이요,이 시대의 진리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는 건 조용필의 노래로만 의미있을 뿐이다.

경제 전쟁이 한창 벌어지는 시절,세계적 기업이 아닌 한 우리 시대의 경영자는 고독한 사냥꾼이 돼야 옳다.

회사에 들어와 있는 영업사원들이 꼴보기 싫으면 사장부터 험한 세상으로 뛰쳐나가라.사냥을 해오든지,아니면 사자나 호랑이처럼 경쟁자들을 쫓아내고 영역 표시라도 해두라.정 할 일이 없으면 '나 살아 있다'고 크게 외치고 와라.경영자가 사냥을 나가야 영업사원이 구두끈을 다시 매고 회사도 살 길이 열릴 것이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