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적나라하게 드러난 국회의 폭력성은 국민들로 하여금 그 벌거벗은 모습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제 구태의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누적 현상도 극에 달하고 있다. "뱀은 껍질을 벗어야 산다. 만일 탈피(脫皮)를 하지 않으면 사멸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국회도 구태를 탈피할 수 있을 것인가.

요즈음 국회 내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국회를 개혁하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전례없는 폭력사태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으로 개혁성향의 일부 의원들이 제시하는 개혁안들 중에는 귀담아들을 만한 것이 많다. 의사진행 방해제도인 '필리버스터'를 허용하고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을 강화하자는 의견,의원평가제를 실시하고,강제 당론을 금지하자는 의견,의원의 의사표현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하고,상임위원회 중심으로 국회를 운영하자는 의견들은 제도화될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도개혁에 관한 것보다도 국회의원의 '교양'과 '양식(良識)'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폭력과 폭언은 어떤 형태이든 '공공의 적'이라는 것은 삼척동자와 같은 초등학교 학생들조차 알 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폭력은 '소수의 방어무기'라고 주장하는 정당을 보면 그들의 양식과 상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아무리 당 지도부가 특정법안에 대하여 결사저지를 다짐했다고 해도 개별적인 국회의원이 폭력의 사악성을 판단할 양식도 없단 말인가.

의원들 각자 국회가 정당은 물론 사회단체나 시민단체에 비해 우위에 있는 헌법기관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국회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또 국회의원 자신들이 대의 민주주의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긍심을 느껴야 한다. 그 결과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참여 민주주의를 외치며 국회에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시민단체들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의지를 갖지 못하는 한,국회의 변신 전망은 어둡다. 그뿐만 아니라 여든 야든 정쟁에만 몰두하는 나머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 국회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인식을 갖지 못한다면 제도 개혁은 효과가 없다.

우리에게는 국회의 제도개혁보다 의원들의 교양쌓기가 시급하다. 폭력이나 폭언을 행사하지 말자고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를 해야 비로소 폭력과 폭언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한심한 일이다. '필리버스터'가 없으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이 확고하지 않아 폭력이 난무하는 것인가. 그동안 당연한 것,순리적이고 상식적인 것까지도 지켜지지 못한 것은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교양이 없어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사회는 민주화도 되고 권위주의 시대에 비해 국회도 정상화되었으나 '계몽화'는 제대로 되지 못했다. 그 결과 문(文) · 사(史) · 철(哲)의 교양과 기본이 부족한 사람들이 국회에 대거 입성하게 된 것이 화근이다. 법으로 정하지 않고,제도적으로 정하지 않아도,정도와 이성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상식과 순리에 입각해서 작동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백본(backbone)',즉 '뼈대'라는 점에 대한 인식을 잃어버린 것이 문제다.

최근 국회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태는 초식공룡인 다수당과 대안없이 반대만 하는 소수당이 대립하여 생긴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순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도 없고 의회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기본적 교양을 쌓지 못한 여당과 야당이 자기절제력 없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여야가 교양은 없고 무치(無恥)의 '권력의지'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기발한 개혁안이 나와도 '백약이 무효'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