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셋톱박스 회사인 한단정보통신의 경영권 분쟁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향후 국민연금의 행보가 주목을 끌고 있다.

◆의결권 행사 배경


국민연금이 그동안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전면에 나선 적은 2007년 동아제약 외에는 한번도 없었다. 당시에도 강신호 회장을 지지한다는 결정은 내렸지만 강문석 이사가 이사선임안을 철회하면서 실제 의결권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금의 규모가 계속 커졌다. 현재 운용 규모는 약 240조원.5% 이상 지분을 갖고있는 상장사만 130여개다. KT(5.69%)의 최대 주주인 것을 비롯 삼성전자(5.9%)와 LG전자(6.58%)의 2대 주주가 됐다.

기금운용본부는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한단정보통신의 현 경영진으로부터 각종 경영 자료를 받아 어느 쪽을 지지할지를 정밀 검토하고 있다. 복지부가 기금운용본부에 의결권 행사를 위임하지 않고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까지 열기로 한 것도 큰 의미를 가지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한단정보통신은 국민연금 입장에서 볼 때 큰 업체는 아니지만 공정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위원회를 이번 주 내에 긴급 소집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단정보통신의 현 경영진인 백운돈 이사는 "지난해 말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00% 이상 늘어나는 성과를 올렸다는 점 등을 들어 국민연금에 지지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장은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게 기금 자산 증식 등의 큰 목표에 부합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주식 비중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경영권과 관련된 의결권 행사를 미룰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따라서 향후 한단정보통신보다 훨씬 큰 규모의 상장사에서도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면 의결권 행사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 국민연금 전문가는 "'펀드자본주의'나 '주주행동주의'라는 말이 있듯이 주주의 의결권은 당연한 권리"라며 "다른 기관투자가들과 마찬가지로 국민연금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필요할 경우 의결권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경영권 분쟁 외에 일상적인 경영에 관여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단순 투자를 한다는 큰 방침이 변하지 않은 데다 현재 기금운용본부의 인력과 운용 규모를 감안하면 그럴 여력도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한단정보통신 지분도 위탁회사를 통해 사들인 것이다.

또 아무래도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이 민간 기업의 경영에 깊게 관여하면 '관치' 우려가 커져 재계의 큰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도 감안될 수밖에 없다. 공공성이 큰 연금이 민간기업의 가장 민감한 경영권에 지나치게 자주 개입할 경우 사회적 논란도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