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열어보려고/ 허공을 긁어대는 손톱들/ 저 무수한 손가락들을 모른 척// …(중략) 불의 그림자로 바느질한 빛의 사서함/ 그녀들의 사서함이 대 끊긴 수련들을/ 붉고 노란 웃음소리로 불러냈을까// 깊은 울음만이 진창으로 흘러들어가/ 붉고 노랗게 웃을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하는 사이에// 수련이 또 수없이 피어났다// 잘 익은 근심들을/ 붉고 노란 웃음소리로/뽑아내듯.'(<빛의 사서함>)

시인 박라연씨(58)의 여섯번째 시집 《빛의 사서함》(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시 60여 편에서는 넉넉한 마음이 묻어나온다. 시인은 <불면>에서 '누군가의 손짓일 것입니다// 독 속의 쌀을 싹싹 긁어 굶주린 허공에게// 밥을 지어 먹이자는'이라고 나직하게 말한다.

이 같은 배려는 <벤자민 씨가 쓴 소설>에서 '손톱도 안 들어갈 만큼 목마른,/ 흙을 뚫으며 미처 못 산 시간을/ 찾아 나선 뿌리들'에서 '화분의 배수구 그 작은/ 통로를 통해 여윈/ 목마른,헤진 여생을/ 혀로/ 삯바느질한 이야기'를 읽어내는 눈썰미로 이어진다.

이는 '얼다가 녹고 녹다가 얼면서 내 눈물 자라 옹달샘만큼 저를 넓혀 용암처럼 끓다가// 방울방울 무사히 흘러나와 빵을 굽고 차를 끓이고 추운 가슴 골고루 덥힐 수 있다면'(<낡아빠진 농사> 중)이라는 소망으로 승화되면서 품이 더 넓어진다.

'산봉우리 몇 채쯤 먹여 살릴 밥을// 짓기 시작했다// 앞산은 뒷산을 뒷산은 옆 산을// 옆 산은 또 다른 산을// 메아리 밥으로 먹여 살리다 보면// 그릇 없이도// 가닿고 싶은 높이가 주시는 밥// 받아안을 수 있을까. '(<품> 중)

문학평론가 오생근 서울대 교수는 "박라연은 넓은 마음과 강인한 모성적 상상력을 지닌 시인"이라며 "이러한 상상력의 힘으로 그는 젊은 날의 눈물을 어느새 밥으로 만들었고,슬픔을 밥상으로 변모시켰다"고 평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