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총리의 잘못이에요. "

일본 자민당의 이마즈 히로시 중의원 의원(63)은 정액급부금의 효과가 없는 이유를 아소 다로 총리의 책임으로 돌렸다. 자민당이 명실상부한 국민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곧 있을 중의원 선거에서 아소 총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면서도 그는 왜 아소를 탓하는 것일까.

정액급부금은 일본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전 국민(1인당 1만2000엔)에게 나눠주고 있는 현금.하지만 효과에 대한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시행까지 4개월이 걸려 때늦은 대책이 돼버린 데다 아소 의 말실수가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아소 총리는 대책을 발표하면서 "고액 소득자들이 이 돈을 받는 것은 '치사하다(さもしい)'"는 표현을 썼다. 평소 실언을 밥 먹듯 해 온 아소였지만 이날 발언은 더 질이 나빴다. 국민의 뇌리에 '정액급부금=경기 진작의 종자돈'이라는 등식을 각인시켜야 했지만 그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돈'이 돼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목적 잃은 돈이 제대로 쓰일 리 없다.

"소비 위축으로 기업들의 투자가 소극적일 때야말로 미래를 위한 공공투자를 확대해야 하는데…정치권의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무라타 노리토시 세븐&아이홀딩스 사장 · 65)

'일본 경제의 공적 1호는 정치'라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총리 등 정치 지도층의 끊임없는 실언과 무분별한 행동이 리더십 부재 현상을 가중시키고,불안한 정국이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시키고 있다.

서방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술에 취한 채 기자회견장에 나섰던 나카가와 쇼이치 전 재무장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소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한 자리 숫자까지 떨어졌다. 절친한 친구이자 핵심 각료인 나카가와의 한심한 행동과 스스로의 잇단 실언,국민의 시선을 무시한 행동이 맞물린 결과다. 국민이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

일본의 리더십 부재가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5년 넘게 장기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후 아베-후쿠다로 이어진 총리 라인은 1년짜리 초단기 집권에 그쳤다. 그래도 그때는 호황을 구가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자민당과 몸 사리기에 급급한 세습정치인에 대한 비난이 들끓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했다. 일본 정치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국민이 민주당을 정치 쇄신의 이상적인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자와 이치로 대표가 자민당 출신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는 데다 최근 수뢰사건에까지 휘말려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9월 이전 치러야 하는 중의원 선거는 일본 경제 회복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공공사업의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2008년 예산 집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요. 2009년 계획을 지금부터 세운다지만 시기는 내년 봄 이후가 됩니다. 그런데 중의원 선거가 있질 않습니까. 자민당이 패배한다면 야당 정권이 출범하게 되지요. 야당이 잡자마자 경기가 좋아졌다는 얘기를 듣고 싶겠습니까. "

다케모리 ?z페이 게이오대 교수(53)는 공공사업을 좋아하는 일본 정부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며 정치 혼란을 답답해했다.

오는 24일은 오자와 민주당 대표의 비서가 기소되는 날이다. 이날 기소 내용에 따라 오자와 대표가 사임하는 사태가 올지,아니면 사건의 불이 자민당으로 옮겨붙게 될지,예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변수들이 속출하게 된다.

일본 정계가 또 한차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면 일본 경제의 회복은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김정호 부국장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