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정치권이 TV 송 · 수신 방식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면 전환하는 데 필요한 재원 중 1000억여원을 TV 제조업체들이 부담할 것을 요구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달 초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저소득층 디지털 TV 보급 사업 등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공문을 발송했다. 방통위는 실무자들로 조사팀을 꾸려 삼성전자를 방문한 데 이어 LG전자 실무자들과도 조만간 만날 예정이다.

기업들은 공문 발송과 조사팀 파견 등을 비용 부담을 종용하는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공문 외에도 복수의 정부와 정치권 관계자들로부터 직 · 간접적인 재원 부담 압력을 받고 있다"며 "거론되는 금액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는 단계일 뿐 정해진 것은 없다"며 "TV 제조사,방송사,통신사 등 디지털 전환과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의 의견을 들은 뒤 정책 방향을 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000억원 부담 주장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방통위가 액수를 정해 기업에 통보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면 TV 교체 수요가 늘어나 기업들이 이득을 보는 만큼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게 정치권에서 처음 나온 '기업부담론'의 골자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미 디지털 전환 사업을 시작한 주요 선진국처럼 주파수 경매 대금,TV 수신료,중앙정부 예산 등을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업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기업에 디지털 전환 비용을 물리면 주요 수출국 정부도 동일한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있어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지난해 75억여원의 디지털 전환 관련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26억8000만원만 받자 필요한 재원 마련에 고심해왔다.

업계에서는 당초 계획대로 아날로그 방송의 디지털 전환 작업이 2012년까지 마무리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필요한 예산이 수조원에 달하지만 재원을 마련할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송형석/박영태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