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론을 공부하다 보면 가끔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도 맞물리는 개념을 만날 때가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 용어인 '낯설게 하기(making it strange)'는 좋은 예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사물을 낯설고 이상한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봄을 의미한다. 원래 슈클로프스키가 예술의 의미와 창작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20세기 초 만들어 낸 이 용어는 비단 예술 창작뿐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 자체에 신선한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낯설게 하기'에 대한 슈클로프스키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파도의 노랫소리에 하도 익숙해져서 더 이상 그것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매일 만나는 사람에게 하도 익숙해져서 더 이상 그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우리는 공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공기를 느끼지 않는다. 요컨대 낯익고 익숙한 세계는 더 이상 우리의 감각에 포착되지 않는다. 우리의 감각은 '자동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대하는 세상은 익숙하고 낯익고 편안하다. 예술가는 그 낯익은 세계를 마치 생전 처음으로 바라보기라도 하듯이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럼으로써 새롭게 재구성한다. 생전 처음 눈을 갖게 된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할 것이다.

문학 작품은 다양한 형태의 '낯설게 하기'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문학에서 대표적인 예를 꼽으라면 단연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일 것 같다. 대부분의 연애 소설이 성인의 시각에서 그려지는 것과 달리 이 소설은 여섯 살 먹은 꼬마 옥희의 시각에서 그려진다. 옥희는 사랑방에 하숙생으로 들어온 아저씨와 과부 어머니 간에 오가는 '성인용' 감정을 아이의 어설픈 시각에서 해석한다. 옥희한테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무척 많다. 그러나 바로 그 이해를 못한다는 점이 하숙생과 주인 아주머니의 진부할 뻔했던 사랑을 무척이나 아름답고도 신비하게 만들어 준다. 주요섭은 상투적인 사랑 이야기를 어린아이의 낯선 시점에서 바라봄으로써 명품 소설로 변형시켰다.

러시아 학자들이 '낯설게 하기'를 설명할 때 늘 언급하는 작품으로 톨스토이의 단편 《홀스토메르》를 들 수 있다. 이 짤막한 소설에서는 인간의 시점과 동물의 시점이 뒤바뀐다. 즉 인간이 동물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늙은 말이 자기의 시점에서 인간 세상을 묘사한다. 말이 바라보는 인간 세상은 정말로 요지경 속이다. 어느 것 하나 이상하지 않은 것이 없다.

톨스토이는 평소 러시아 상류사회에 대해 품고 있던 불만을 그대로 토로하는 대신 동물의 시각에서 동물의 언어로 묘사함으로써 더욱 강렬한 설득력을 획득한다. 낯선 시선은 이 짤막한 소설을 직설적인 사회 비판이 도달할 수 없는 예술의 경지에 올려 놓았다.

이 밖에도 '낯설게 하기' 기법은 여러 문학 작품 속에서 발견된다. 러시아 모더니즘 시대에 활약했던 올례샤는 '물건들은 나를 싫어한다'라는 문장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올례샤의 중편 《질투》에서 주인공이 하는 말인데,사물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독특한 방식 때문에 평론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다.

간혹 유난히 잘 넘어지거나 잘 다치거나 먹을 때 입천장을 잘 데이는 사람들이 있다. 올례샤는 이런 사람들을 사물의 입장에서 '물건들이 싫어하는 사람들'로 분류한다. 주인공도 그 부류에 든다. 그래서 그의 앞에 놓인 수프는 절대로 식지 않고,가구는 그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 벼르고 있고,그가 떨어뜨린 동전이나 단추는 꼭 하필이면 움직이기 어려운 가구 밑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올례샤에게 예술이란 원래가 낯익고 상투적인 세상을 새롭게 자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주인공은 시종일관 낯선 시각에서 세상을 지각한다. 취미가 관찰인 그는 생전 처음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과도 같이 세상 구석구석을 유심히 바라본다. 그의 시선 속에서 세계는 광학과 기하학의 법칙을 무시하고 저 나름의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도로는 인간의 관절이고 도로를 걸어 다니는 사람은 관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통증을 선사하는 류머티즘이다. 그는 자기가 뒤통수로 사물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까지 한다.

'낯설게 하기'를 꼭 문학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세상을 새롭게 보기 위해서 꼭 예술가가 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일상은 매사에 낯선 시선을 요구한다. 낯익은 시선,자동화된 시선,관습적인 시선을 뒤집는 새로운 시선은 대인 관계에서 비즈니스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을 쇄신해 줄 수 있다.

얼마 전부터 자기계발 영역에서 화두가 되어 온 '역발상'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낯선 시각에서 기존의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흔히 말하는 창의성이라는 것 역시 남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거창한 발상의 전환이나 어마어마한 창의력이 아니라도 좋다. 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가끔은 이제까지와 다른 시점에서 사람과 사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함께 사는 가족,매일 만나는 직장 동료를 한번쯤은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자.나 자신의 삶을 한번쯤은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자.일상 속에 파묻혀 희미해져 가던 많은 것들이 그 낯선 시선 속에서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마음,감사하는 마음,용서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