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드] 기로에 선 개성공단‥'통행 합의서' 국제법 보호 못받아…정치에 휘둘릴 운명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남북이 분단된 지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손을 맞잡고 탄생시킨 개성공단 사업이 출범 5년 만에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12월1일 북한이 통행인원을 절반으로 제한한 데 이어 지난 9일 한 · 미간 군사합동 훈련인 '키 리졸브' 훈련이 시작된 이후 방북 육로를 전면 차단하면서 개성공단이 폐쇄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북 길은 지난 17일 다시 열렸지만 남북 당국간 감정의 골이 깊은 만큼 언제든 폭발할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키 리졸브' 한미합동 군사훈련 종료일인 20일만해도 북한의 통행 동의통보가 지연됨에 따라 개성공단 관계자들의 오전 방북이 무산됐다. 이로 인해 앞으로도 북측이 언제 어떤 핑계를 내세워 개성공단 육로 통행을 차단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때 남한의 자본과 기술력, 북한의 노동력과 토지가 결합된 '윈-윈' 방식의 성공적인 남북 경제협력 모델로 평가받던 개성공단이 이젠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개성공단 어디까지 왔나
개성공단 사업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6 · 15 남북 공동선언을 계기로 남북이 개성공단 사업에 합의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단내 2개 여단병력을 뒤로 물리는 결정을 내리면서 개성공단 조성에 힘을 실어줬다. 그해 8월 현대아산과 북한 아태평화위원회가 '개성경제지구 및 관광사업 합의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개성공단 개발 구상에 착수,2003년 6월에 공사에 들어갔다.
향후 개발될 개성공단의 총면적은 여의도의 8배인 65.7㎢(2000만평)에 이른다. 전체 부지는 크게 공장구역(26㎢)과 배후시설인 생활,관광,상업구역(40㎢)으로 구성돼 있다. 공장구역은 다시 1~3단계로 나뉘어진다. 2003년 6월에 첫 삽을 뜬 1단계 부지는 2007년 12월에 완공됐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곳에는 현재 101개 기업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33개 기업이 추가로 입주하기 위해 공장을 건축하고 있다. 현지 진출 기업중 봉제 · 섬유업종이 전체의 40~50% 가량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신발,가방,전기,기계부품 관련 업체다.
당초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는 1단계 부지를 분양받은 기업이 모두 입주하는 2010년경에는 450개 업체가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대북사업 리스크로 입주예정업체들이 공장 건설을 중단하거나 입주 결정을 보류하고 있어 1단계 완공은 상당기간 늦어질 전망이다. 2단계 개발 사업도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기본구상(개발계획)을 거쳐 올해 상반기 쯤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지난해 3월 문화재 지표조사를 끝으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최소 1년 이상 늦춰진 셈이다. 3단계 개발일정은 현재로선 아예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남북경협 왜 꼬이나
개성공단 파행의 주범은 단연 남북간 신뢰상실이다. 남한은 2007년 총리 회담 때 이른바 3통(통행,통관,통신)의 보장을 위해 노후화된 통신 장비를 교체해주겠다고 북측에 제안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뒤 북측이 통신장비 교체요구를 하자 남한은 실무회담 개최 등 재협상을 요구했다가 북측의 반발로 남북간 대화가 단절된 상태다. 이로인해 남북경제협력기금(1조5000억 규모) 집행도 중단된 실정이다.
북측도 남북합의를 위반했다며 남북간 대화를 단절하고 있다. '통미봉남' 전략으로 남한을 의도적으로 따돌리는 것도 한 배경이다. 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지금과 같이 남북간 신뢰가 추락한 상황에서는 양쪽 지도자의 결단이 없으면 현 상황 해소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허술한데다 강제력도 없는 합의들도 공단 운영 부실화를 재촉하는 요인이다. 개성공단과 관련한 남북 합의서에 따르면 개성공단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상사중재위원회를 거쳐 쌍방의 합의에 의해 문제를 해결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현재 상사중재위원회는 구성조차 되고 있지 않다. 개성공단을 둘러싸고 남북간의 분쟁이 생길 경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전무한 것이다.
개성공단과 관련해 남북이 체결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지구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를 비롯해 '동 · 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통행,통신,통관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개성공업지구법' 등도 국제법적인 효력이 없어 북한이 일방적으로 개성공단 폐쇄를 강행하더라도 우리가 취할 조치가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한 대북전문가는 "개성공단의 발전과 투자를 촉진하려면 남북간의 합의를 좀더 구체화시키고 공단 운영에 부실한 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노력이 절실하다"며 "이같은 제도화 작업이 남북간 신뢰회복에 따른 대화 재개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전면 폐쇄 가능성은 낮아
일단 북한이 개성공단 전면 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개성공단 폐쇄가 북한에게 정치적 ·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이 통행재개를 허용한 17일은 공교롭게도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북측 근로자를 위한 식자재를 공급하는 날짜와 겹쳤다.
이는 북한이 개성공단을 바라보는 양면적인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개성공단은 연간 3352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주요 외화획득의 수단이기도 하다. 결국 정치적 이용을 위해 대남압박용 카드로 사용했지만 공단 폐쇄는 북측도 결코 원하는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개성공단 폐쇄가 자칫 북한의 외자 유치 노력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점.개성공단은 북한의 나진 · 선봉경제 특구 실패 후 실종된 국제사회의 투자 의지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보루다. 이러한 개성공단이 북측의 정치적 목적으로 또다시 폐쇄 절차를 밟는다면 북한은 투자처로서의 매력을 완전히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개성공단 정상화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18일 "개성공단 폐쇄는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 "정부는 개성공단을 안정적으로 잘 관리해서 발전시킨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임동 개성공단기업협의회 사무총장은 "개성공단은 남한과 북한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라고 볼 수 있다"며 "부부싸움이 심해도 자식 때문에 헤어질 수 없는 것처럼 개성공단이 활성화되면 될수록 남북은 자연스레 대립구도를 벗어나 공존번영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개성공단이 대남압박 카드로 충분히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만큼 단기적으로는 북한이 '개성공단 카드'를 한반도 위기 조성용으로 언제든지 이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북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정선/구동회 기자 kugija@hankyung.com
지난해 12월1일 북한이 통행인원을 절반으로 제한한 데 이어 지난 9일 한 · 미간 군사합동 훈련인 '키 리졸브' 훈련이 시작된 이후 방북 육로를 전면 차단하면서 개성공단이 폐쇄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북 길은 지난 17일 다시 열렸지만 남북 당국간 감정의 골이 깊은 만큼 언제든 폭발할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키 리졸브' 한미합동 군사훈련 종료일인 20일만해도 북한의 통행 동의통보가 지연됨에 따라 개성공단 관계자들의 오전 방북이 무산됐다. 이로 인해 앞으로도 북측이 언제 어떤 핑계를 내세워 개성공단 육로 통행을 차단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때 남한의 자본과 기술력, 북한의 노동력과 토지가 결합된 '윈-윈' 방식의 성공적인 남북 경제협력 모델로 평가받던 개성공단이 이젠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개성공단 어디까지 왔나
개성공단 사업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6 · 15 남북 공동선언을 계기로 남북이 개성공단 사업에 합의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단내 2개 여단병력을 뒤로 물리는 결정을 내리면서 개성공단 조성에 힘을 실어줬다. 그해 8월 현대아산과 북한 아태평화위원회가 '개성경제지구 및 관광사업 합의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개성공단 개발 구상에 착수,2003년 6월에 공사에 들어갔다.
향후 개발될 개성공단의 총면적은 여의도의 8배인 65.7㎢(2000만평)에 이른다. 전체 부지는 크게 공장구역(26㎢)과 배후시설인 생활,관광,상업구역(40㎢)으로 구성돼 있다. 공장구역은 다시 1~3단계로 나뉘어진다. 2003년 6월에 첫 삽을 뜬 1단계 부지는 2007년 12월에 완공됐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곳에는 현재 101개 기업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33개 기업이 추가로 입주하기 위해 공장을 건축하고 있다. 현지 진출 기업중 봉제 · 섬유업종이 전체의 40~50% 가량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신발,가방,전기,기계부품 관련 업체다.
당초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는 1단계 부지를 분양받은 기업이 모두 입주하는 2010년경에는 450개 업체가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대북사업 리스크로 입주예정업체들이 공장 건설을 중단하거나 입주 결정을 보류하고 있어 1단계 완공은 상당기간 늦어질 전망이다. 2단계 개발 사업도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기본구상(개발계획)을 거쳐 올해 상반기 쯤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지난해 3월 문화재 지표조사를 끝으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최소 1년 이상 늦춰진 셈이다. 3단계 개발일정은 현재로선 아예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남북경협 왜 꼬이나
개성공단 파행의 주범은 단연 남북간 신뢰상실이다. 남한은 2007년 총리 회담 때 이른바 3통(통행,통관,통신)의 보장을 위해 노후화된 통신 장비를 교체해주겠다고 북측에 제안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뒤 북측이 통신장비 교체요구를 하자 남한은 실무회담 개최 등 재협상을 요구했다가 북측의 반발로 남북간 대화가 단절된 상태다. 이로인해 남북경제협력기금(1조5000억 규모) 집행도 중단된 실정이다.
북측도 남북합의를 위반했다며 남북간 대화를 단절하고 있다. '통미봉남' 전략으로 남한을 의도적으로 따돌리는 것도 한 배경이다. 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지금과 같이 남북간 신뢰가 추락한 상황에서는 양쪽 지도자의 결단이 없으면 현 상황 해소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허술한데다 강제력도 없는 합의들도 공단 운영 부실화를 재촉하는 요인이다. 개성공단과 관련한 남북 합의서에 따르면 개성공단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상사중재위원회를 거쳐 쌍방의 합의에 의해 문제를 해결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현재 상사중재위원회는 구성조차 되고 있지 않다. 개성공단을 둘러싸고 남북간의 분쟁이 생길 경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전무한 것이다.
개성공단과 관련해 남북이 체결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지구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를 비롯해 '동 · 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통행,통신,통관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개성공업지구법' 등도 국제법적인 효력이 없어 북한이 일방적으로 개성공단 폐쇄를 강행하더라도 우리가 취할 조치가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한 대북전문가는 "개성공단의 발전과 투자를 촉진하려면 남북간의 합의를 좀더 구체화시키고 공단 운영에 부실한 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노력이 절실하다"며 "이같은 제도화 작업이 남북간 신뢰회복에 따른 대화 재개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전면 폐쇄 가능성은 낮아
일단 북한이 개성공단 전면 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개성공단 폐쇄가 북한에게 정치적 ·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이 통행재개를 허용한 17일은 공교롭게도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북측 근로자를 위한 식자재를 공급하는 날짜와 겹쳤다.
이는 북한이 개성공단을 바라보는 양면적인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개성공단은 연간 3352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주요 외화획득의 수단이기도 하다. 결국 정치적 이용을 위해 대남압박용 카드로 사용했지만 공단 폐쇄는 북측도 결코 원하는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개성공단 폐쇄가 자칫 북한의 외자 유치 노력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점.개성공단은 북한의 나진 · 선봉경제 특구 실패 후 실종된 국제사회의 투자 의지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보루다. 이러한 개성공단이 북측의 정치적 목적으로 또다시 폐쇄 절차를 밟는다면 북한은 투자처로서의 매력을 완전히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개성공단 정상화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18일 "개성공단 폐쇄는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 "정부는 개성공단을 안정적으로 잘 관리해서 발전시킨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임동 개성공단기업협의회 사무총장은 "개성공단은 남한과 북한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라고 볼 수 있다"며 "부부싸움이 심해도 자식 때문에 헤어질 수 없는 것처럼 개성공단이 활성화되면 될수록 남북은 자연스레 대립구도를 벗어나 공존번영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개성공단이 대남압박 카드로 충분히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만큼 단기적으로는 북한이 '개성공단 카드'를 한반도 위기 조성용으로 언제든지 이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북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정선/구동회 기자 kugi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