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박연차 리스트' 수사가 가속화되면서 정치권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검찰은 22일 현재 민주당 이광재 의원을 소환 조사하고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체포하는 것으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치권 로비설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상태다.

현역 국회의원을 포함해 20명 안팎의 정치인이 수사 대상에 올라있다는 소문이 검찰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가운데 금주부터 정.관계 인사들의 줄소환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불체포 특권을 갖고 있는 현역 의원에 대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4월 임시국회 개회 전 고강도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진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긴장감은 가파르게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사진행 상황은 4월 임시국회와 4.29 재보선에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경제살리기를 위한 대규모 추가경정 예산안, 비정규직 대란을 막기 위한 비정규직법 개정안 등에 대한 심의가 이뤄져야 할 민생.경제 국회는 `박연차 리스트'가 서서히 공개되면서 정쟁 국회가 될 소지가 다분하며, 4.29 재보선 결과 역시 리스트의 실체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

◇한나라당 = 한나라당은 마치 `폭풍 전야'와도 같다.

한나라당의 텃밭인 경남 지역에 사업기반을 둔 박 회장이 부산.경남 전.현직 의원들과 친분이 두터운 `마당발'로 널리 알려져 있는 데다, 한때 한나라당 재정위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정치인 로비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 궤도에 오르자 마자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허태열(부산 북.강서을) 최고위원, 권경석(경남 창원갑) 의원 등의 실명이 거론된 점도 이 같은 맥락이다.

또한 부산의 유력 중진 의원인 A 의원이 검찰의 `타깃'에 올랐다는 말도 나오며, 친이(친이명박계) 인사로서 부산에서 활동해온 B, C 전 의원 등 적지않은 이름이 정치권에서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동시에 추부길 청와대 전 비서관이 체포됨으로써 검찰의 칼날이 서서히 여권의 중심부를 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터라 한나라당은 표정은 점차 굳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박 회장과의 금품거래설을 적극 부인하며, 검찰 수사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실명이 언급됐던 허태열 최고위원, 권경석 의원도 "금품을 받은 적이 없다"며 즉각 반박했었다.

이와 관련, 안경률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잘못한 일이 있으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당당히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우리 당에서는 (연루된 사람이) 없지 않겠느냐 싶은데, 누가 받았는지 알지 못하고 어디에서 흘리는지 알 수 없지만 자꾸 얘기가 나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윤상현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한마리 미꾸라지가 온 물을 흐려놓았다"며 "누구든 잘못이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하고,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는데 여야나 지위고하의 차별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 민주당은 현역 정치인은 물론 전(前) 정권인사들까지도 전방위 표적수사를 받고 있다는 극도의 반감 속에 앞으로 또 무슨 일이 터질줄 모른다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전 정권인사의 경우 당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기록물 유출사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의 금전거래 문제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와있고, 형 건평씨와 이강철 전 청와대 정무특보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현역 정치인 중에서는 김민석 안희정 송영길 최고위원이 재판 또는 수사를 받고 있고, 김재윤 이광재 서갑원 최철국 의원, 김혁규 전 의원 등이 수사 선상에 올라와 있다. 심지어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대선후보 경선시절 정무특보까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민주당은 일련의 흐름을 야당 탄압이자 표적수사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최근 각종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4월 임시국회와 4.29 재보선을 앞두고 공안정국을 조성해 `야당 죽이기'를 본격화하는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이 팽배하다.

김유정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국회가 열리면 `MB악법'으로, 폐회중에는 공안정국으로 야당을 탄압하고 괴롭히는 이명박 정권을 규탄한다"며 "그동안 표적수사했던 야당인사가 아무리 털어도 먼지가 나오지 않자 마치 열 번 찍어도 안넘어가는지 보자는 식으로 `오기수사'를 벌이는 것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박연차 리스트'를 포함해 공개할 것이 있으면 남김없이 다 공개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을 촉구한다"며 "다만 야당에 대해 부당한 표적.편파수사로 갈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검찰이 박연차 회장 사건과 관련,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에 대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한 것에 대해서도 "야당탄압 비난을 희석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한 당직자는 "대통령 측근 한 사람을 `맛보기' 형태로 체포함으로써 야당에 대해 더욱 강경한 탄압에 나서겠다는 신호탄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범현 류지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