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법하게 채무 면제받는데 10만원.바로 전화주세요. "

"더 이상 독촉에 시달리지 마시고 전화주십시오.시원하게 빚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인근을 지나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고문구다. 이들에게 연락하면 어떤 경우라도 빚을 탕감받게 해줄 것 같은 이런 광고문구들에 현혹돼 재산을 숨기고 파산신청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08년 한 해만도 11만8643건에 이를 정도로 개인파산신청이 폭주하면서 파산신청을 둘러싼 불법 및 도덕적 해이가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는 것.


2007년 개인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된 이후 현재까지 120건가량의 파산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개인파산관재인 권성연 변호사를 통해 들여다본 한국은 '파산을 권하는 사회'였다.

권 변호사가 파산관재인에 선임된 것은 2007년.전체 40명 개인 파산관재인 중 홍일점이다. 2008년까지 2년간 맡은 사건은 60건인데 올해 1월부터 3월까지만 총 60건의 사건이 권 변호사 손으로 넘어왔다.

그는 "법원에서 파산 신청자에 대해 서류만으로 면책해주기가 미심쩍을 경우 파산관재인에게 재산관계를 파악해 보라고 한다"며 "제게 오는 사건이 늘어난 것은 뭔가 숨기는 파산자가 증가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파산사건이 넘어오면 권 변호사는 채무자의 경제활동 전부에 대해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보듯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권 변호사는 2년간의 파산관재인 생활을 통해 체득한 노하우로 30여개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그가 분류해본 사기 파산자의 유형은 크게 3가지로 꼽힌다.

첫째는 '살려주세요형'.이것 저것 서류를 내놓으라고 하면 정말 돈 없다고 눈물만 훌쩍이는 유형이다. 두 번째는 '배째라형'.파산하는 게 당연한 권리인 양 파산관재인에게 되레 큰소리를 치는 유형이다.

권 변호사는 "부인 명의로 10억여원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자 '부인이 나랑 살면서 모은 재산인데 왜 그걸 내놓으라고 하느냐'며 큰소리를 치는 사람도 있는데,재산의 부부 공동 기여가 인정되듯 빚도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부쩍 증가한 케이스는 '협상형' 파산자다. 파산관재인에게 이것 저것 털어 놓으면서 여기까지만 숨기고 여기까지는 처분하자고 협상을 제의하는 유형.심지어는 파산관재인에게 뒷돈을 찔러 주려는 사람도 있고 빚 때문에 파산하면서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권 변호사는 "파산을 당당한 자신의 권리라고만 생각해 책임을 면하려고 하는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며 "파산관재인을 하다 보면 인간의 천태만상을 보게 된다"고 털어놨다.

권 변호사가 기억하는 가장 황당한 파산신청자는 부인 명의로 사업을 하고 있던 김모씨.10년 전 부도를 낸 뒤 경제활동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김씨의 주장에 검색엔진인 '구글(Google)'을 이용해 김씨의 이름을 검색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김씨는 부도 이후에도 수십억원대 토지를 소유한 부인 명의의 물류회사 사장으로 모 신문과 인터뷰까지 했다.

빚은 갚지 않은 채 부인 명의로 사업하다가 정상적인 사업가로 행세하고 싶어 파산신청을 한 것.이에 권 변호사는 김씨에게 신문기사를 보여줬고 김씨는 그런 것까지 찾아냈느냐며 부인 명의로 사업을 해왔다고 실토했다. 김씨가 면책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파산관재인을 하면서 안타까운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특히 어떤 사람에 대한 면책이 받아들여졌는데 돈을 빌려줬던 영세 채권자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것을 보고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권 변호사는 "남편의 사망 보험금을 빌려줬는데 빌려간 사람이 파산해버려 돈을 받지 못해 파산신청하게 되는 경우도 봤다"며 "파산제도의 취지야 좋지만 일부 비양심적인 파산자들로 인해 고통받는 영세채권자들의 권리도 보호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박민제/사진=양윤모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