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왜 화장(化粧)을 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벌레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부족간 전쟁시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거나 신분 또는 계급을 구분하려는 목적으로, 주술적 종교적 필요에 의해, 그리고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등등….

다 일리 있는 추론들이다. 그런데 화장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화장의 기원이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는 데 대해서는 거의 모든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그만큼 화장은 시공을 뛰어넘는 인류의 보편적인 행위라고 한다. 고대 벽화에서 화장한 사람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화장은 근세에 접어 들면서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별한 의식을 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남성이 화장을 하는 경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치 않았던 것이 그간의 사정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 세태도 바뀌는 법. 최근 미용과 패션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들을 일컫는, 소위 '그루밍(grooming)족'이 크게 늘면서 남성용 화장품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편의점 'GS25'에 따르면 올 들어 남성용 스킨, 로션 등 기초화장품 매출이 지난해보다 무려 150% 넘게 증가했다고 한다. 땀냄새를 제거해주는 데오도란트는 무려 9배나 많이 팔렸고, 미니 남성화장품 세트 매출도 152% 늘었다. 한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그루밍 · 남성 화장품 정보 카페'는 회원 수만 1만4000명이 넘는다.

최근 '꽃미남' 배우들을 등장시켜 인기를 끌고 있는 TV드라마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만큼 외모에 신경 쓰는 남성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올해 10대 블루슈머(주목할 만한 소비자 그룹)에 '거울보는 남자'를 포함시킨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쿨하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건 인지상정(人之常情) 이니 이를 굳이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그러잖아도 외모 지상주의가 판치는 마당에 남성들조차 내실보다 겉치장만 쫓는 건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논어(論語)의 한 구절을 되새겨 볼 일이다. '화장을 아무리 잘했어도 화장하는 이의 본마음이 순수하고 깨끗지 않다면 그 아름다움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