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백만 대군이 왜 그런 자그마한 안시성하나 함락시킬 수 없었을까.

당태종은 10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의 안시성을 포위했다. 안시성을 지키는 고구려군 숫자는 당의 백만 대군에 비해 말 그대로 조족지혈이었다. 새까맣게 둘러싼 당군을 보며 겁에 질린 고구려군들. 당태종은 성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고구려군의)항복은 필요 없다. 성안에 움직이는 것은 모두 죽여 없애라!”
이 말을 들은 고구려군은 오히려 전의를 다졌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죽을 각오로 싸울 수밖에.

역사를 돌아 보건데 굳게 닫힌 성문을 여는 것은 외적이 아니라 대부분 내부의 배신자, 즉 내부의 적이었다. 당태종은 자비롭게 항복을 권하고, 살 통로를 열어 타협을 제안해서 성안의 국론을 균열시키지 못했다. 정반대로 배수의 진을 치게 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그렇게 3개월 이상을 버틴 안시성 고구려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얼마 전 미국 시민들은 격분하게 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 정부로부터 공적 자금을 지원받은 AIG의 수뇌부가 자사의 임직원들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했다는 것. 혈세라고 표현되는 국민의 세금이 경영정상화와는 거리가 먼 곳에 쓰이고 있었다.
“이런 초미의 금융위기에 월급도 아닌 보너스라니. 현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직장에서 쫓겨나는 형편인데 감히 국민들의 혈세로 돈 잔치란 말인가.”
미대륙 여기저기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고, AIG에서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우리는 금융위기 이전의 계약대로 임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만일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를 핑계로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관련 임직원들로부터 소송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업무 수행에 막대한 차질이 생겨 회생을 위한 모든 노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법을 지켜야한다는 것.

20세기 대공황의 어두운 터널을 몸소 경험했던 주류 언론은 즉각 경영진의 무능과 도덕 불감증 그리고 특권의식을 비판했다.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흑인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 전역의 각계각층에서 질타와 성토가 잠잠해지지 않을 경우 경제회생을 위한 불씨를 살리기도 전에 꺼져버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집단이나 사회 그리고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정작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는 것은 바로 내부에 있는 적이다. 그리고 그것을 방치했을 경우에 그 끝은 몰락이라는 교훈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이미 숱하게 접해온 평범한 진리다.

산에 가면 사냥꾼이 되고, 물에 가면 어부가 되어야한다. 태풍으로 배가 좌초할 위기에 처했는데, 열심히 갑판을 청소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철로에 뛰어든 자에게 상을 줄 것인가, 철도 규정대로 법을 집행할 것인가. 인간은 늘 법 위에 있어야한다. 내부의 적은 사람이 법아래 있을 때 자주 등장한다. (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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