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벗는다'는 말은 검사들에게는 때때로 의미심장하다. 검사 직을 사직하고 공직을 떠날 때 '옷을 벗는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검사의 옷'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아마도 재판에 임하는 판사가 법복을 입듯이 검사가 내리는 각종 처분이 개인으로서의 결정이 아니라 법 집행자로서 행하는 공식적인 결정임을 비유하는 말일 것이다. 판사는 재판을 할 때 늘 법복을 입지만 검사는 형사 재판에서 공소 유지 활동을 하는 경우 외에는 대부분 법복을 입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판사의 옷'이 관념과 실체의 결합이라면 '검사의 옷'은 보다 관념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에서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이지만 검사의 다양한 활동과 결정에 대한 그 옷의 통제력은 매우 강력한 것이다.

이러한 관념의 옷은 검사가 실제로 입는 옷을 통해 실체화된다. 범죄와 범인을 밝혀 내고 피해자의 아픔을 위로해 주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검사의 드레스 코드는 단연코 정장이다. 그 경우의 정장은 검정색,감색,회색빛이 주종을 이룬다. 깔끔한 흰색 셔츠에 검정색 정장은 법의 엄격함과 침범키 어려운 권위를 반영한다. 세련된 블루 셔츠에 감색 정장은 기품 있는 절제와 차갑도록 청명한 법 의식을 상징한다. 은은한 그레이 셔츠에 회색빛 정장은 법의 엄정함 속에 가려져 있는 따뜻한 배려와 연민을 표현한다.

'검사의 옷'은 민원인에게 예를 갖추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검사에게는 일상화된 만남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검찰청에 오는 일은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경험이다. 내 집에 오는 손님을 맞을 때 집안을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듯이 검사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민원인에게 정돈된 모습의 예를 갖추어야 함은 당연하다. 이는 검사의 결정이 민원인의 요구 사항을 잘 해결해 주어야 하는 실질적인 면뿐만 아니라 민원인에게 결정 경위를 상세히 설명하는 등 형식적인 면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이러한 검사의 자세는 바로 민원인이 갖는 신뢰와 직결된다. 내 자신의 잘못을 단죄하기 위해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해도 그 결정을 신뢰한다면 큰 슬픔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으리라.

최근 여검사가 급증하면서 여성의 정장 차림에 대한 관심도 높다. 여성의 정장이 워낙 종류가 많다 보니 바지도 정장에 속하는지,재킷 없는 원피스나 미니 스커트도 정장인지 등 그 한계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오랜 검사 생활을 통해 '검사의 옷'이 관념적 법복의 상징임을 경험한 상사들은 일부 검사의 '튀는 복장'을 다소 우려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이 같은 우려에 공감하지만 자기 표현의 자유를 양보하는 데 익숙지 않은 일부 신세대 후배들에게는 고민스런 일이다.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고 남달리 표현하고픈 본능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어쩔 것인가. 스스로 만족해도 신뢰받지 못하는 외관보다 소박할지라도 믿음을 주는 '검사의 옷'이 피할 수 없는 검사의 운명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