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내빈(外華內貧)'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프로야구 출범 27년째를 맞은 한국은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일본과 5차례에 걸친 처절한 `야구전쟁'을 벌인 끝에 세계 2위라는 위대한 업적을 일궈냈다.

야구가 한국에 도입된 지 104년 역사에서 최고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시 국내로 눈을 돌리면 창피하다는 지적밖에 나오지 않는다.

WBC 2연패를 달성한 일본이 전국에 4천100개가 넘는 고교야구팀을 보유하며 엄청난 인적 자원을 양성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고교야구 팀수가 55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한야구협회는 재정자립조차 하지 못해 예산의 절반을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내부적으로는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뚜렷한 개혁 방안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아마 야구의 현실이다.

이처럼 척박한 풍토에서 한국야구가 야구 종가 미국을 비롯해 대부분 메이저리거들로 구성된 중남미 국가들과 경쟁을 벌여 결승전에 진출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KBO도 하등 나을 게 없다.

프로팀 수는 1991년 이후 19년째 8개 구단에 머물고 있다.

KBO는 2007년 현대 유니콘스가 파산하는 과정에서 농협과 STX, KT 등과 1년 가까이 야구단 인수 협상을 벌였지만 아무런 성과도 건지지 못한 채 지난 수십 년간 적립했던 기금 131억원만 몽땅 날려버렸다.

현대가 문을 닫은 뒤 8개 구단을 유지하기 위해 창업투자사인 센테니얼인베스트먼트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끌어들여 히어로즈를 창단했지만 아무래도 대기업들이 모회사인 나머지 7개 구단과의 경쟁에서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

또한 히어로즈는 지난해 네이밍스폰서 계약을 맺었던 우리담배와 시즌 도중 결별하면서 아직도 확실한 후원기업을 찾지 못해 미래가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지방구장 시설 등 야구 인프라는 더욱 한심하다.

건립된 지 40여년이 넘은 대구와 광주, 대전구장은 개보수를 거듭하고 있지만 협소한 관중석과 열약한 부대시설로 말미암아 프로구장으로 소개하기 창피하다는 지적을 넘어 안전 문제마저 제대로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몇몇 지자체와 야구계 일각에서는 국제대회 유치를 위해 돔구장 건립을 공언하고 있지만 프로야구 관중 유치와 경기력 향상을 위해선 구체적인 성과를 노리는 돔구장보다 지방구장 건립이 훨씬 시급한 과제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처럼 국내적으로 해결해야 할 현안은 산적하지만 야구발전의 중심축이 돼야 할 KBO는 오히려 권위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해 KBO는 모든 예산 편성 권한을 회원사인 8개 구단으로 넘겨 주고 허수아비 신세가 됐다.

어떤 사업 하나를 추진하더라도 8개 구단의 승인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KBO가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커미셔너 사무처가 아닌 8개 구단의 경기를 보좌하는 일개 운영국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 와중에 정치권은 KBO를 낙하산 인사를 내릴 수 있는 요직으로 치부하고 있다.

지난 겨울 정치권의 압력으로 사퇴 소동 끝에 KBO 수장에 오른 유영구 총재는 WBC의 영광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현안들을 풀어나가는 실무형 총재로서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shoel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