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호재는 없다. 하지만 나올 만한 악재는 다 나왔다. "

최근 반도체 경기흐름을 지켜본 삼성전자 반도체 마케팅 관계자의 시장평이다. 1년6개월이 넘도록 내리막길을 걸어온 반도체업계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반도체 가격이 큰 폭으로 반등할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지만 최소한 하락세가 멈추고 하방경직성이 생겼다는 게 업계의 일치된 의견이다. 실제 D램이나 낸드플래시메모리 가격의 경우 한국 일본 대만의 연쇄적인 감산과 재고 축소로 추가 하락 가능성은 극히 낮은 상태다.

◆D램 낸드플래시 동시에 '꿈틀'

오히려 대만 업체들의 통합계획 무산이 발표된 지난 16일 D램 현물가격은 약 2% 가까이 올랐다. 안성호 KB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만 D램업체들의 통합철회로 경쟁력 없는 업체들의 파산 가능성을 높였다"며 "이로 인해 추가감산이 이뤄지면서 D램 값은 완만한 반등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 D램 시장의 2.7%를 점유하고 있는 대만 프로모스는 최근 정부 주도의 통합회사 설립안이 수포로 돌아가자 D램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경기가 부진하지만 계절적 성수기에 대한 기대감이 되살아나면서 현물값은 4월부터,고정거래값은 5월부터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말까지 D램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졌던 낸드플래시 메모리 가격이 3G폰 스마트폰 노트북 등에 대한 수요 확대로 큰 폭의 반등을 시작한 것도 업계를 고무시키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가 D램:낸드플래시 생산비중을 76:24로 유지하고 있는 반면 낸드플래시 비중이 40%에 달하는 삼성전자가 상대적으로 더 큰 혜택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미국 중국 수요 확대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중국 등 거대 반도체 수요국들의 주문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반도체 경기 턴어라운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컴퓨터와 휴대폰 보급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중국 당국의 산업정책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갖고 있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가 최대 수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분기 이후 50나노대 D램 공정기술을 적용하고 있는 양사는 조만간 40나노대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56나노 공정에서 44나노로 전환하고 하이닉스는 54나노에서 44나노로 바꾸기로 한 것.공정기술이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원가 경쟁력은 30% 이상 상승한다. 이에 따라 2007년 4분기 이후 줄곧 적자행진을 이어왔던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우 연내 흑자전환 가능성까지 나올 정도로 실적이 호전되고 있다.

◆향후 관건은…

물론 최근의 가격반등이나 수요 확대를 세계 IT업계의 재고보충 전략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실제 동유럽 등 이머징마켓의 경제위기가 수그러들 기미가 없고 글로벌 경기침체의 장기화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반도체 경기가 본격적인 상승세에 접어들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2분기 이후 글로벌경기가 호전될 징후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세계 IT업계의 생산능력이 다시 퇴조할 수밖에 없고 반도체경기도 덩달아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또 최근 고공행진을 거듭해온 원 · 달러 환율이 실적 호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점을 감안하면 향후 환율 동향도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