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예술가이자 경제학자인 한스 애빙은 "예술세계는 복권과 같다"고 말합니다. 엄청난 보상이 따르지만 당첨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도 젊은 예술가들은 지칠 줄 모르고 몰려들고,그 결과 '가난한 예술가'가 넘쳐납니다. 서구 유럽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예술가들은 여전히 가난합니다.

왜 그럴까요. 한스 애빙은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박세연 옮김,21세기북스)에서 이른바 '예술경제'의 예외성을 분석하고 예술의 야누스적인 양면을 파헤칩니다. '신성한 가치' 뒤에 숨어 예술세계를 움직이는 '상업적인 거래'와 후원 시장의 그림자도 들춰냅니다.

그의 표현대로 '예술의 신화를 좇아 가난의 굴레를 쓰는 사람들'은 예술의 신성함,사회적인 존경,자신의 만족감을 추구하면서 돈을 기꺼이 포기한 채 '승자독식'의 예술세계로 '아트러시(art rush)'를 감행합니다. 그런데 '예술의 신화를 굳게 믿는 젊은이들은 마치 금광을 찾아 몰려드는 골드러시를 연상케 하고,실제로 그들의 열정은 뜨겁지만 마침내 환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들은 다른 일을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그는 독일 자동차 기업 아우디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스테델릭미술관에 거액의 지원을 제안했다가 '예술의 자율성 침해'라는 명목 때문에 거절당한 사례를 들며 '상업성을 혐오하기라도 하는 듯한 고상한 태도'를 꼬집습니다. 또 상업성을 외면함으로써 돈을 버는 '예술의 이중성'을 지적합니다.

'승자독식을 부추기는 후원의 딜레마'도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정부와 기업들이 로마시대에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한 마에케나스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득이 되는 작품들'만 골라 후원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승자독식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라는군요. 이래저래 예술의 세계는 '풍요 속의 가난'이라는 숙명을 벗어나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