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감추려, 詩를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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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씨 새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 출간
시인 최영미씨(48)가 4년 만에 네번째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문학동네)을 발표했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신산한 삶을 거치며 '홀로 달콤하며 홀로 아프고 홀로 뜨거운 것'으로 야문 시심을 펼쳤다. 그만큼 애정도 남달랐다.
그는 "첫 시집 《서른,잔치는 끝났다》가 뭘 모르고 하는 연애였다면 이번 시집은 사랑의 즐거움을 알고 하는 연애같다"면서 "부끄럽지 않은,만족스러운 시집"이라고 말했다.
시집의 제목은 수록작에서 한 구절을 따서 지었다. '떠나기만 하고 도착하지 않은 삶./ 여기에서 저기로,/ 이 남자에서 저 여자로 옮기며/ 나도 모르게 빠져나간 젊음./ 후회할 시간도 모자라네.'(<여기에서 저기로> 중)
이에 대해 일본 시인 사가와 아키는 "'도착하지 않은 삶'이란 '도착하지 않은 사랑','도착하지 않은 시'를 의미한다"면서 "도착하지 않은 삶을 구하는 것이 시"라고 평했다.
'도착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시인의 목소리는 가끔 쓸쓸해진다. '어떤 꿈은 나이를 먹지 않고/ 봄이 오는 창가에 엉겨붙는다/ 땅 위에서든 바다에서든/ 그의 옆에서 달리고픈/ 나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략) 어떤 꿈은 우리보다 빨리 늙어서,/ 가을바람이 불기도 전에/ 무엇을 포기했는지 나는 잊었다. '(<사계절의 꿈> 중) '노동과 휴식을 바느질하듯 촘촘히 이어붙인 24시간을/ 내게 남겨진 하루하루를 건조한 직설법으로 살며/ 꿈꾸는 자의 은유를 사치라 여겼다. / 고목에 매달린 늙은 매미의 마지막 울음도/ 생활에 바쁜 귀는 쓸어담지 못했다 여름이 가도록.'(<어느새> 중)
첫시집 《서른,잔치는 끝났다》에서 보여준 성(性)과 1980년대에 대한 솔직함과 대담함은 최씨를 단숨에 '문단의 신데렐라'로 올려놓았지만 많은 논란과 오해를 불러왔다. 2005년 낸 시집 《돼지들에게》 또한 작품의 '수준'에 대한 비판과 함께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이번 시집에서 최씨는 주위의 시선에 초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차피 사람들의 평판이란/ 날씨에 따라 오르내리는 눈금 같은 것./ 날씨가 화창하면 아무도 온도계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나쁜 평판> 중)
하지만 그에게 삶은 도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않은' 것이기에 시선은 늘 앞에 놓인 길을 향해 있다. <다시는>에서는 '시를 쓰지 않으마/ 불을 끄고 누웠는데…/ 옆으로,뒤로,먼지처럼 시가 스며들었다. / 오래 전에 죽은 단어들이/ 하나둘 달빛에 살아 움직여도./ 나는 연필을 들지 않았다'고 말하다가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 떠나지 말라고/ 내 손에 꽃을 쥐여주며'라고 뒤집어버린다.
그런 시인에게 시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었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혀를 깨무는 아픔 없이/ 무서운 폭풍을 잠재우려// 봄꽃의 향기를 가을에 음미하려/ 잿더미에서 불씨를 찾으려// …(중략) 치명적인 시간들을 괄호 안에 숨기는 재미에/ 부끄러움을 감추려,詩를 저지른다. '(<나는 시를 쓴다> 중)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