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정(27)의 연기 이력은 럭비공과 같다.

'올드보이'에서 친부를 사랑하게 되는 딸 역으로 주목받았던 그녀는 '웰컴 투 동막골'에서 한국전쟁 중 피아를 구분 못하는,극단적으로 순수한 여인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도마뱀'에서는 스스로 외계인이라고 주장하고,'연애의 목적'에서는 자신과 잠자려면 50만원을 내라고 말할 정도로 당돌한 여선생 역할을 해냈다.

신작 '우리집에 왜왔니?'에서도 첫 남자를 너무 깊이 사랑한 탓에 스토커가 돼버린 노숙자 수강 역으로 나온다. 2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소유욕이나 집착이 생기는 여성들 얘기는 비일비재해요. 다만 수강은 좋아하는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출한 캐릭터죠.남자친구의 고소로 세번이나 옥살이를 했으니까요. '열면 안되는 문을 열어버린'인물이라고나 할까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던 여자가 우연히 연하의 남자친구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고,그것이 믿음으로 이어져 평생 함께 살아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든 거죠.이처럼 독특한 캐릭터에 끌리는 게 제 취향인가 봐요. "

그녀는 여배우들이 꺼리는 배역에 과감하게 도전한다. 그녀가 내뿜는 에너지는 늘 스크린마저 뚫고 나올 기세였다.

"이번의 노숙자 연기는 정말 힘들었어요. 스타일은 국내 노숙자가 아니라 '거지도 멋있게 보이는' 유럽식 노숙자를 본떴어요. 색깔이 화려한 옷을 겹겹이 껴입은 채 추위에 떠는 역을 작년 5월부터 8월까지 한 여름에 촬영했으니까요. 긴 머리카락은 떡지고 부스스했고,코트 남방 카디건 머플러 레깅스에다 양말 2개를 껴입었어요. 촬영 중 너무 더워 답답하고 숨 막히고,혈압마저 떨어져 어질어질해진 게 한 두번이 아니었어요. 이 하루가 언제 가나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

노숙자 신분의 수강은 극중에서 중대한 전기를 맞는다. '남친' 사생활을 엿보기 위해 맞은 편 아파트에 들어갔는 데 때마침 주인(박희순)이 목매 자살하려던 찰나였다. 그를 살려내곤 꽁꽁 동여묶은 채 함께 생활한다. 그러다 화재가 났을 때 그로부터 보호받은 뒤 커다란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하지만 그들은 가까워지기에는 너무 먼 별에서 온 사람들이다.

"지구상의 절반인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연애하고 사랑하고 결혼한다는 게 알고 보면 대단하고 기적같은 일이란 거지요. 너무 흔하기 때문에 평소 우리가 소중함을 못느낄 따름이죠."

그녀는 현재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촬영 중인 한 · 미 합작 로맨틱코미디 '웨딩팰리스'에서 키 작은 컴플렉스로 결혼 전선에 어려움을 겪는 커리어우먼 역으로 나섰다. 차기작으로 정해진 '러브픽션'도 이 단계에서 자세한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독특한 캐릭터"라고 귀띔했다.

'남친'으로 공개한 가수 타블로(본명 이선웅)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훌륭해요"라며 "남친으로서,가족 구성원으로서,가수란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어울리게 충실하게 행동해요"라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