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근의 史史로운 이야기] 老子, 벌거숭이를 야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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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上善若水).'
노자가 세상을 등질 때 국경 수비대장 윤희에게 써 줬다는 《도덕경》 오천언(言)의 종지이자 가장 대중적인 경구는 단연 이 '상선약수'일 것이다. 그만큼 노자는 물을 칭송한 부드러움의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다. 그러나 단단하고 힘센 것을 물리치는 데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天下莫柔弱於水,而攻堅强者,莫之能勝).' <78장>
'사람이나 초목이나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진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堅强者死之徒,柔弱者生之徒).' <76장>
이쯤 되면 거의 종교의 경지라고 할 만한데,노자는 훗날 사람들이 힘만 숭상할 것을 미리 간파했음인지 간단명료한 한마디를 덧붙여 놨다.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강함이다(守柔曰强).' <52장>
전승에 따르면 '부드러움을 지킴'은 노자가 자득한 것이 아니고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다. 3세기의 기록인 《고사전(高士傳)》은 노자의 스승이 세 가지 유훈을 남겼는데,그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고 한다.
스승 상용(商容)이 병이 들자 노자가 마지막 가르침을 청했다. 상용이 입을 벌리고 말했다.
"내 혀가 있느냐(吾舌存乎)?"
"있습니다(存)."
"내 이빨은 있느냐(吾齒存乎)?"
"없습니다(亡)."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강한 것은 없어지고 약한 것이 있다는 말씀 아닌지요?"
"바로 그것이다. 천하만사의 이치가 다 그러하니라."
지난해 베이징대학 광화관리학원(경영대) 건물 입구에 세워진 조각상 두 점이 논란 거리라고 한다. 우락부락한 씨름 선수의 나체를 가감 없이 표현한 초대형 '서 있는 몽골 사나이(蒙古漢-站)'와 입이 헤벌어진 노자의 두상 '굳셈과 부드러움(剛柔之道-老子像)'이 그것이다. 문제는 언밸런스한 크기는 물론이고 작가도 다르고 완성 시점도 다른 작품을 하필이면 마주 보게 세운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몽골 사나이'는 지식이 곧 힘임을 보여 주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는데,민망할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치부의 외설성에 시비가 집중됐다. 혀를 내민 익살맞은 노자는 혀와 이를 보임으로써 공자에게 부드러움의 도를 가르치는 장면이라는 전고(典故) 설명에도 불구하고 성인을 희롱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심지어 "맨몸을 옷으로 가리지 않은 것(衣不遮體)만도 치욕인데,감히 성인의 코앞에 세워 놓다니 노자 선생은 어디다 얼굴을 두라는 말이냐"고 분격한 중화 민족주의자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논란은 핵심을 비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대단히 부조화스러운 배치를 결정한 이 대학 학장의 의도는 힘만 믿고 설쳐 대는 저급한 문명을 향한 중국의 통렬한 야유 아니었을까? 다만 형편상 벌거벗은 야만의 표현물로 같은 국가의 일원인 '몽골 사나이'를 내세운 꼴이어서 차마 미안하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게다.
티베트를 당당하게 지지해 온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결국 후진타오 주석에게 무릎을 꿇었다. "내정 불간섭 원칙에 따라 티베트 문제는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인권과 중국의 돈을 맞바꿨다. 중국은 '닭을 죽여서 원숭이를 겁주는(殺鷄儆 )' 전략으로 사르코지라는 닭을 멋지게 요리하는 데 성공했다. 힘만 휘두른다고 부시를 내려봤던 중국이 힘을 믿기 시작한 양상이다. 베이징대의 노자 선생은 내부의 벌거숭이들을 향해 헤벌린 입을 더 크게 벌려 "이건 아니다. 부드러운 것이 진정 강한 것이다"라고 가르쳐야 할 모양이다.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
노자가 세상을 등질 때 국경 수비대장 윤희에게 써 줬다는 《도덕경》 오천언(言)의 종지이자 가장 대중적인 경구는 단연 이 '상선약수'일 것이다. 그만큼 노자는 물을 칭송한 부드러움의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다. 그러나 단단하고 힘센 것을 물리치는 데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天下莫柔弱於水,而攻堅强者,莫之能勝).' <78장>
'사람이나 초목이나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단단하고 강해진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堅强者死之徒,柔弱者生之徒).' <76장>
이쯤 되면 거의 종교의 경지라고 할 만한데,노자는 훗날 사람들이 힘만 숭상할 것을 미리 간파했음인지 간단명료한 한마디를 덧붙여 놨다.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강함이다(守柔曰强).' <52장>
전승에 따르면 '부드러움을 지킴'은 노자가 자득한 것이 아니고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다. 3세기의 기록인 《고사전(高士傳)》은 노자의 스승이 세 가지 유훈을 남겼는데,그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고 한다.
스승 상용(商容)이 병이 들자 노자가 마지막 가르침을 청했다. 상용이 입을 벌리고 말했다.
"내 혀가 있느냐(吾舌存乎)?"
"있습니다(存)."
"내 이빨은 있느냐(吾齒存乎)?"
"없습니다(亡)."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강한 것은 없어지고 약한 것이 있다는 말씀 아닌지요?"
"바로 그것이다. 천하만사의 이치가 다 그러하니라."
지난해 베이징대학 광화관리학원(경영대) 건물 입구에 세워진 조각상 두 점이 논란 거리라고 한다. 우락부락한 씨름 선수의 나체를 가감 없이 표현한 초대형 '서 있는 몽골 사나이(蒙古漢-站)'와 입이 헤벌어진 노자의 두상 '굳셈과 부드러움(剛柔之道-老子像)'이 그것이다. 문제는 언밸런스한 크기는 물론이고 작가도 다르고 완성 시점도 다른 작품을 하필이면 마주 보게 세운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몽골 사나이'는 지식이 곧 힘임을 보여 주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였다는데,민망할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치부의 외설성에 시비가 집중됐다. 혀를 내민 익살맞은 노자는 혀와 이를 보임으로써 공자에게 부드러움의 도를 가르치는 장면이라는 전고(典故) 설명에도 불구하고 성인을 희롱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심지어 "맨몸을 옷으로 가리지 않은 것(衣不遮體)만도 치욕인데,감히 성인의 코앞에 세워 놓다니 노자 선생은 어디다 얼굴을 두라는 말이냐"고 분격한 중화 민족주의자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논란은 핵심을 비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대단히 부조화스러운 배치를 결정한 이 대학 학장의 의도는 힘만 믿고 설쳐 대는 저급한 문명을 향한 중국의 통렬한 야유 아니었을까? 다만 형편상 벌거벗은 야만의 표현물로 같은 국가의 일원인 '몽골 사나이'를 내세운 꼴이어서 차마 미안하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게다.
티베트를 당당하게 지지해 온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결국 후진타오 주석에게 무릎을 꿇었다. "내정 불간섭 원칙에 따라 티베트 문제는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인권과 중국의 돈을 맞바꿨다. 중국은 '닭을 죽여서 원숭이를 겁주는(殺鷄儆 )' 전략으로 사르코지라는 닭을 멋지게 요리하는 데 성공했다. 힘만 휘두른다고 부시를 내려봤던 중국이 힘을 믿기 시작한 양상이다. 베이징대의 노자 선생은 내부의 벌거숭이들을 향해 헤벌린 입을 더 크게 벌려 "이건 아니다. 부드러운 것이 진정 강한 것이다"라고 가르쳐야 할 모양이다.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