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 규모 줄면서 거래량 감소…작은 충격에도 툭하면 하루 50원 널뛰기
외환딜러 등 시장 관계자들은 지난 두 달여간 급등과 급락을 거듭하던 환율이 드디어 1380원대에서 안정되고 있다며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폐장을 불과 4분 앞둔 오후 2시56분 환율 그래프가 급하게 꺾였다. 어느 대기업이 달러를 내다팔아 환율이 1370원대로 내려갔고 추가 하락을 예상한 은행 외환딜러들이 연이어 달러를 내던졌다. 결국 이날 환율은 전날보다 20원50전 떨어진 1363원으로 마감했다. 달러를 내다판 기업은 3000만~4000만달러를 팔았다고 추정될 뿐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환율의 흐름은 작은 변수에도 급등락을 거듭하는 국내 외환시장의 현실을 잘 보여줬다. 환율은 2월 한 달간 급등세,3월 한 달간 급락세를 연출했다. 하루에도 심한 경우 50원씩 오르내리고 있다.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진 가장 큰 이유는 거래량 감소다. 서울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량은 지난해 9월만 해도 평균 80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던 것이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가 본격화된 지난해 10월에는 49억달러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요즘도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량은 50억달러를 넘는 날이 거의 없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출과 수입이 모두 급감하면서 기업들의 환전 수요가 줄어든 데다 은행 딜러들도 손실을 우려해 은행 간 거래를 활발하게 펼치지 않은 탓이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거래량이 많으면 매도 호가와 매수 호가가 다양하게 나오고 그 중간 가격에 거래가 체결되면서 환율의 변동폭이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거래량이 적으면 한번은 높은 가격에서 체결되고 한번은 낮은 가격에서 체결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변동폭이 커진다고 전한다.
김성순 기업은행 자금운용부 차장은 "과거에는 5000만달러가 시장에 쏟아지면 그로 인한 환율 변동 폭이 2~3원에 그쳤는데 요즘엔 그 정도 물량이면 환율이 10원씩 움직인다"고 말했다.
은행 딜러들의 추격 매도와 추격 매수도 환율의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외환딜러들은 보통 개인별로 수억달러의 한도를 갖고 거래를 하는데 일정 규모 이상의 손실은 내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다. 따라서 달러를 많이 팔고 났는데 환율이 상승할 조짐을 보이면 뒤늦게 달러 매수에 나서고 반대로 달러를 많이 샀는데 환율이 하락세를 보이면 급하게 달러를 내다파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환율이 오를 때든 내릴 때든 가속도가 붙는다.
전문가들은 대외의존도가 높고 자본시장이 개방된 이상 외환시장의 변동성은 숙명과도 같다고 진단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선진국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대규모로 자본을 회수,환율이 급등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글로벌 경기가 호황으로 접어들면 다시 이들의 자금이 국내로 돌아오면서 빠른 속도로 환율이 떨어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일부에서는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역외를 비롯한 투기적 거래를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10월 정부는 외환시장의 거래 내역을 매일 점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오히려 거래를 위축시키는 결과만 낳았고 얼마 안 가 이 방침을 철회했다.
김두현 외환은행 외환운용팀 차장은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거래량을 늘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인위적으로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