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림사업 30여년…이젠 나무 크는 소리도 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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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 동탑훈장 받는 안도영 삼영임업 대표
"강원도 산림지역은 땅심이 얼마나 좋은지 나무 크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나무가 쑥쑥 크는 모습에 매료돼 평생 나무심는 일에만 매달려 왔습니다. "
제64회 식목일을 맞아 동탑산업훈장을 받는 안도영 삼영임업 대표(65 · 사진)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조림사업 하나로 연 10억여원의 소득을 올리며 '임업의 기업화'에 성공한 임업경영인이다.
1967년 군에서 제대한 안 대표는 고향인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광동리에서 목재상을 하는 형님을 도와주다 일찍이 국내산 목재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됐다. 당시만 해도 헐값에 팔리던 질 좋은 토종 목재들이 언젠가는 제값을 받고 비싸게 팔릴 날이 올 것이라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된 그는 나무에 '올인'하기로 결심했다.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중반까지는 때마침 화전정리 사업과 대대적인 녹화사업이 펼쳐지던 시절이었다. 시작부터 호기를 맞은 안 대표는 76년 삼영임업을 창업,조림영업을 펼치며 임업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석탄산업이 호황이었던 80년대까지 그는 생산된 목재들을 침목이나 버팀목용으로 인근 광산에 납품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수종에 따라서는 1년에 2m씩 자라지만 미처 목재를 대지 못할 정도로 재미를 봤습니다. 당시 탄광지역에서는 개도 1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했지만 사실 큰 돈은 우리 같은 임업인들이 다 챙겨갈 정도로 나무장사가 짭짤했지요. "
그러던 중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정책 이후 광산들이 한꺼번에 문을 닫으면서 그도 하루 아침에 부도위기에 몰렸다. 엄청나게 깔아놓은 미수금을 한 푼도 못 받고 몽땅 떼여 직원들 임금조차 주지 못해 자살할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그를 다시 살려낸 건 역시 나무였다.
"나무는 절대로 사람을 속이는 일이 없습니다. 잘 가꾸고 보살피기만 하면 큰 수익을 안겨준다는 걸 실제로 겪어 봤기 때문에 또다시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
자신이 소유한 20㏊의 산에 다시 나무를 심기 시작한 안 대표는 그 뒤 지상권 설정 등으로 약 300㏊에 달하는 어머어마한 면적을 더 확보,소나무와 낙엽송 잣나무 등을 심었다. 조림지역 내 숲가꾸기 등 산림환경 개선을 통해 임목생장을 촉진,우량목을 생산하며 내실도 다졌다. 국내산 목재의 가치를 인정받을 날이 오리라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현재 그가 생산하는 금강송 등 우량 목재들은 문화재나 한옥 보수용으로 비싼 값에 팔려나간다.
그는 "나무 심는 일에는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욕하는 사람이 없다"며 "나무를 좀더 많이 심고 가꾸기 위해 대규모 임야 매입을 추진 중"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삼척=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
제64회 식목일을 맞아 동탑산업훈장을 받는 안도영 삼영임업 대표(65 · 사진)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조림사업 하나로 연 10억여원의 소득을 올리며 '임업의 기업화'에 성공한 임업경영인이다.
1967년 군에서 제대한 안 대표는 고향인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광동리에서 목재상을 하는 형님을 도와주다 일찍이 국내산 목재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됐다. 당시만 해도 헐값에 팔리던 질 좋은 토종 목재들이 언젠가는 제값을 받고 비싸게 팔릴 날이 올 것이라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된 그는 나무에 '올인'하기로 결심했다.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중반까지는 때마침 화전정리 사업과 대대적인 녹화사업이 펼쳐지던 시절이었다. 시작부터 호기를 맞은 안 대표는 76년 삼영임업을 창업,조림영업을 펼치며 임업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석탄산업이 호황이었던 80년대까지 그는 생산된 목재들을 침목이나 버팀목용으로 인근 광산에 납품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수종에 따라서는 1년에 2m씩 자라지만 미처 목재를 대지 못할 정도로 재미를 봤습니다. 당시 탄광지역에서는 개도 1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했지만 사실 큰 돈은 우리 같은 임업인들이 다 챙겨갈 정도로 나무장사가 짭짤했지요. "
그러던 중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정책 이후 광산들이 한꺼번에 문을 닫으면서 그도 하루 아침에 부도위기에 몰렸다. 엄청나게 깔아놓은 미수금을 한 푼도 못 받고 몽땅 떼여 직원들 임금조차 주지 못해 자살할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그를 다시 살려낸 건 역시 나무였다.
"나무는 절대로 사람을 속이는 일이 없습니다. 잘 가꾸고 보살피기만 하면 큰 수익을 안겨준다는 걸 실제로 겪어 봤기 때문에 또다시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
자신이 소유한 20㏊의 산에 다시 나무를 심기 시작한 안 대표는 그 뒤 지상권 설정 등으로 약 300㏊에 달하는 어머어마한 면적을 더 확보,소나무와 낙엽송 잣나무 등을 심었다. 조림지역 내 숲가꾸기 등 산림환경 개선을 통해 임목생장을 촉진,우량목을 생산하며 내실도 다졌다. 국내산 목재의 가치를 인정받을 날이 오리라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현재 그가 생산하는 금강송 등 우량 목재들은 문화재나 한옥 보수용으로 비싼 값에 팔려나간다.
그는 "나무 심는 일에는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욕하는 사람이 없다"며 "나무를 좀더 많이 심고 가꾸기 위해 대규모 임야 매입을 추진 중"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삼척=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