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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산책] 예술은 혼돈의 우주에서 '질서' 찾으려는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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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메틱과 코스모스
    김진엽 < 서울대 미학과 교수 >
    분을 바르고 립스틱을 칠한다. 화장을 뜻하는 코스메틱은 그 언어의 뿌리가 코스모스에 닿아 있다. 분과 립스틱에 우주가 담겨 있는 것이다. 무슨 까닭일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로 널리 알려진 바 있는 진화심리학은 그 까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인류 문명의 시원으로 돌아가 보자.

    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마침내 폭우가 쏟아진다. 번개가 어둠을 가르고 천둥이 움집을 흔든다. 어둠이 언제 걷힐지 폭우가 언제 그칠지 종잡을 수 없다. 홍수에 마을이 쑥대밭으로 된 때가 얼마 전인데.공포와 두려움이 몸과 마음을 감싼다. 울음과 탄식이 솟아오른다. 빗소리가 심장을 뒤흔든다. 귀를 막고 싶다.

    그런데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려 온다. 둥.퉁.둥.퉁.비와 천둥에 간혹 삼켜지기는 하지만,북소리는 중단되지 않고 더욱 커진다. 이제 하나가 아닌 여러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다소 마음이 안정된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폭풍우가 잦아들고 아침이 밝아 온다. 밖으로 나선다.

    마을은 카오스 상태이다. 질서와 조화를 찾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먼저 나부터 단장을 하리라.볼엔 대각선들을 가지런히 그려 놓고 팔뚝엔 동그라미 무늬를 아로새긴다. 나의 조화가 마을의 조화,세상의 조화,나아가 우주의 조화로 이어지기를 바라 본다.

    아늑한 먼 옛날 회장은 예측할 수 없는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바꾸려는 애틋한 노력이었다



    예술은 우리의 영원한 고향, 힘들고 고단할때 혼자라도 중얼거리자

    "Bravo your Life"


    비록 가상적 이야기이지만,위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왜 화장의 코스메틱이 코스모스와 통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코스모스는 우주이지만 조화로운 우주이다. 태초의 카오스에 질서와 조화가 자리 잡으면 코스모스가 된다. 아득한 먼 옛날,화장은 예측할 수 없는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바꾸려는 애틋한 노력이었다.

    울긋불긋한 얼굴에 고운 분을 바르고,뺨에 정연한 추상적 무늬를 그려 넣는 일은 거칠고 광포한 자연에 분을 바르고 무늬를 그려 넣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인간의 이러한 애틋한 노력은 화장을 넘어서서 규칙적인 북소리,그릇의 추상적 문양,돌탑 쌓기 등에도 이어진다. 이러한 일들 모두에 제어할 수 없는 자연과 세상에 질서와 조화를 부여하려는 인간의 희망과 갈망이 담겨 있다. 규칙적인 장단의 북소리나 목소리를 내면서 거친 폭풍우를 달래려 하였고,그릇에 추상적 문양을 새겨 넣으며 가늠할 수 없는 벌판을 측정하려 하였고,마을 어귀에 돌탑을 쌓으며 가족의 안녕과 평화를 빌었다.



    물론 그런다고 카오스가 코스모스로 물리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희망과 갈망을 지니는 것이 절망과 낙심에 빠지는 것보다는 카오스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간혹 힘이란 믿음이지 현실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희망의 알갱이들은 함께 모아져 집단적 제의나 축제가 되었다. 화장이나 보디 페인팅을 한 공동체의 성원들이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셨다. 때로는 한 해의 풍년을 빌었고,때로는 부족의 단합을 맹세하였고,때로는 전쟁의 승리를 선포하였고,때로는 일상의 고단함을 달랬다.

    그런데 공동체 구성원이 참여하던 제의나 축제는 공연자와 관람자가 구분되는 연극으로 분화되기도 하였다. 무대를 꾸미고 객석을 만들어 배우가 연기를 펼치는 전문적 공연의 시작인 것이다. 관객들은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에 웃고 울고 박수 치고 열광하였다. 그리고 제의나 축제에 모아졌던 북소리나 화장 등 예술의 씨앗들은 싹을 틔워 음악,무용,문학,그림 등의 개별적 예술 장르로 꽃피어 나갔다.

    이렇듯 예술은 자연과 화합하려는 그리고 삶을 부양시키려는 목적에서 출발하여 점차 전문화와 분업화의 과정을 밟아 나간다. 그 전문화와 분업화의 과정을 통해 각 예술 장르들은 나름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찾아 나서고,서로 경쟁하고 각축하며 자신만의 뚜렷한 근대 왕국을 확립한다. 음악을 위한 음악,시를 위한 시,그림을 위한 그림이 메아리친다. 그리고 음악을 위한 공간,시를 위한 공간,그림을 위한 공간이 엄밀히 구획되어 마련된다. 이를 통해 예술은 순수함을 얻게 되지만 그 대가로 자신의 시원이자 고향이었던 일상적 삶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렇지만 고향은 우리의 영원한 노스탤지어 아니던가. 삶과 자연과 우주에 조화와 질서를 마련하려던 우리들 먼 선조들의 애틋한 노력은 우리 가슴 한 편에 유전자처럼 아로새겨져 일상이 힘들고 고단할 때 우리는 여전히 한 줄의 시에 가슴 뛰고,한 곡의 음악에 도약하고,한 점의 그림에 전율하며 오늘을 이겨 나간다. 이미 너무 멀어졌다고 주저하지 말자.벌써 훌쩍 떠나왔다고 망설이지 말자.태고적 예술의 유전자는 아직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달구고 벼린다. 비록 찰나라도 아침의 사무실에 음악을 켜고,점심의 거리에서 그림을 보고,저녁의 하늘에 노을을 담자.이도저도 벅차다면 혼자서 노래라도 흥얼거리자.'브라보 마이 라이프!'라고.예술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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