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귀족들의 시계로 유명한 '브레게'의 가격은 최소 1000만원대부터 수억원대에 이른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기에 지름 5㎝도 안되는 작은 시계가 고급 승용차에 맞먹는 몸값을 지닐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스위스 발레드주에 있는 브레게 공장을 찾아갔다. 발레드주에는 브레게 외에도 블랑팡,예거쿨트르 공장 등 시계 장인들이 몰려 있는 지역이다.

바젤 시내에서 버스로 2시간가량 이동하면 호수를 낀 한적한 산골 마을에 5층짜리 브레게 시계공장이 나온다. 우선 작업장에 들어가기 전에 방진가운부터 입어야 했다. 반도체공장처럼 0.1㎜ 이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시계공장 역시 먼지가 최대의 적이다.

예술가 풍모의 시계 장인들을 기대하며 작업장에 들어섰지만 첫 인상은 의외였다. 공정의 출발점인 지하층에 대형 컴퓨터 기계부터 눈에 띄었다.

이 곳에선 시계 원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핸드메이드'라고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기본 판형을 만드는 단순 작업은 기계를 쓴다. 이렇게 원판이 구성되면 1층부터는 장인의 손길을 거쳐 정교한 부품 조각으로 다듬는 작업이 본격 진행된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든 장인들은 한쪽 눈에 룩배(확대경)를 달고 있다. 장인들은 초소형 부품의 모서리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연마하고,시계바늘부터 무브먼트에 들어가는 부품을 일일이 분업을 통해 제작한다. 확대경이 없으면 보이지도 않는 1㎜ 미만의 작은 부품들도 수십 가지에 달한다. 브레게의 특징인 다이얼판(18K 골드)의 '기요셰' 문양도 끝이 1㎜도 안 되는 날카로운 도구로 일일이 조각한다.

꼬박 하루 동안 장인 한 사람이 새겨야 다이얼판 하나가 나온다. 그래서 브레게 다이얼판은 어느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다. 보통 시계 하나에 필요한 부품은 500~800개,미닛리피터가 장착되면 2000~3000여개에 이른다.

이렇게 모든 부품들이 완성되면 모델별로 모든 부품이 키트에 포장돼 2층으로 올려진다. 이제부터는 시계 장인 한 명이 완성품으로 조립하는데,연간 8만개만 만든다. 시계 장인에도 등급이 있어 투르비옹,미닛리피터,문페이스,퍼펙추얼 캘린더 등 특수기능을 조립하는 방이 따로 있다. 이 같은 기능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가격은 400만원 이상 높아진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