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 서서

창밖을 내다본다

높다랗게 난 작은 창 너머에

나무들이 살고 있다

나는 이따금 그들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본다

잘 보이지 않는다

까치집 세 개와 굴뚝 하나는

그들의 살림일까?

꽁지를 까딱거리는 까치 두 마리는?

그 나무들은 수수하게 사는 것 같다

잔가지들이 무수히 많고 본줄기도 가늘다

하늘은 그들의 부엌

지금의 식사는 얇게 저며서 차갑게 식힌 햇살이다

그리고 봄기운을 한두 방울 떨군

잔잔한 봄기운을 천천히 오래도록 삼키는 것이다

-황인숙 '조용한 이웃' 전문

첫 이사 와서 일주일,이사 떠나기 전 일주일이 전부다. 이웃엔 누구누구가 살고,창너머에 보이는 작은 언덕이 알프스를 닮았다고 벅찬 가슴을 열어젖혔던 기억 말이다. 이웃을 마음에 담고 살기엔 삶의 무게가 버거울 따름이다. 눈을 크게 뜨고 보려 해도 잘 보이지 않는 탓도 있다. 인사 잘 안한다 시끄럽게 군다고 타박도 하지 않는 '조용한 이웃'은 수수한 새색시 같다. 차갑게 식힌 햇살과 봄기운 머금은 바람을 먹고 사는 그들이 초록옷을 갈아입고 있다. 이 봄 그들이 있으므로 우리는 행복하다.

남궁 덕 문화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