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로비성 자금이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로까지 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노 전 대통령이 어제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대로라면 개탄을 넘어 충격적이기도 하다. 수억원의 자금을 노 전 대통령 부인 쪽에서 부탁을 해서 받았고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지 않아도 '박연차 수사'가 진행될수록 500만달러의 거액이 노 전 대통령 조카사위에게 건네졌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이런저런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제기된 터였다. 500만달러 송금건만 해도 해외에서 조성된 투명하지 못한 자금이 해외계좌로 넘어간 것부터 시작해 돈의 용처,노 대통령과의 연관성 등 규명 사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 전 비서관을 통한 자금수수 역시 요청 배경과 사용처 등에 대한 더 자세하고 정확한 수사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앞으로 엄정하고 공정한 수사,정치적 계산없는 진실규명의 필요성은 이제 새삼 강조할 일도 못 된다.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사죄하는 형식을 갖췄다지만 전직 대통령이 떳떳하지 못한 자금 수수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노무현 정권 5년간 계속됐던 온갖 정책에 대한 시시비비와는 별개로 최소한 공직수행 과정에서 도덕성만큼은 그 이전보다 진일보했을 것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이번 일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국민들이 느끼는 허탈감과 분노는 바로 그런 배신감에서 증폭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아울러 정치인들은 어떤 경우든 '막말'을 해서는 안되고 늘 스스로부터 되돌아봐야 한다는 교훈을 지금 직전 대통령이 보여주는 셈이다. 틈만 나면 정제되지 않은 표현으로 청렴과 도덕성을 강조해왔던 것이 노 전 대통령 아니었던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유사한 이런 수사와 단죄가 서글프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개탄만 할 일도 아니다. 아직도 수사의 길은 멀고,이제 이런 일을 끊는 것이 더 중요한 까닭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야와 정파에 구애없이,수십명이 됐든 그 이상이 됐든 성역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차제에 돈이 들지 않는 정치문화를 새로 닦는 각오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사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