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빚을 갚으십니까. '

서울 서초동 법원 주변에는 개인회생 및 파산신청을 권유하는 이 같은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변호사나 법무사들이 채권금융회사의 빚 상환 독촉에 시달리는 채무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광고다.

채무자들이 빚 부담에서 벗어나 재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제도가 사전에 재산을 빼돌리거나 여러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로 빛이 바래고 있다. 개인회생은 빚을 줄여주거나 갚는 기간을 늘려주는 것이고,개인파산은 빚 자체를 없애주는 제도다.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 소액 신용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한 대부업체 관계자는 "채무자가 빚 갚는 날짜를 넘겨 조사해봤더니 집을 다른 가족 이름으로 넘기고 법원에 회생신청을 해버렸다"며 "갚으라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파산 신청은 금융위기 이전인 지난해 8월 8609건이었지만 12월에 1만189건으로 증가했다. 개인회생 신청은 지난해 8월 3373건이었으나 12월 4796건,올해 2월 5044건으로 늘었다.

서초동 법원 일대에서 이 같은 업무를 대리하는 법률사무소는 2~3년 전만 해도 20여군데에 불과했으나 최근에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법원을 이용하는 것 외에도 채무를 조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신용회복기금의 전환대출(환승론)과 채무재조정,신용회복위원회의 사전 채무재조정(프리워크아웃) 등이 현 정부 들어 새로 만들어진 제도다. 기존의 개인 워크아웃이나 시중은행과 저축은행들이 독자적으로 시행키로 한 프리워크아웃까지 합하면 그 종류를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모럴 해저드에 빠진 채무자들의 회생 신청은 고스란히 금융사와 건실한 고객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채무자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빚을 줄여주거나 탕감해주는 것은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악의적인 채무자들을 걸러내기 위해 법원이 재산추적을 제대로 하고 강도 높은 책임을 묻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