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본으로 출범한 국내 첫 은행은 1899년 창립된 대한천일은행이었다.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일본 금융자본의 금융 침탈에 맞서기 위해 황실과 상업자본이 힘을 합쳐 은행을 설립했던 것.이에 앞서 이조참판과 도승지 · 예조판서를 지낸 김종한이 1897년 한성은행을 세웠으나 대금업 수준에 그친 데다 자본의 성격도 친일 · 매판자본으로 평가받고 있어 민족자본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1월 대한천일은행의 창립 관련 문서 및 회계문서 18건 75점이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79호로 일괄 지정된 것은 이런 까닭이다. 현존 기업의 창립 관련 유물이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처음으로,대한천일은행의 창립은 한국 금융 · 기업사에서 그만큼 중요하다.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의 은행사박물관에 있는 '대한천일은행 창립청원서'는 "화폐융통은 상무흥왕(商務興旺)의 본(本)"이라고 밝히고 있다. 금융 발전이 경제 발전의 기초라는 뜻.또 정관 제10조에는 '한인(韓人) 외에는 깃권(주식)의 매매양도를 불허함'이라고 규정했다. 철저히 민족자본을 지향했던 증거다.

창립 당시 주주는 18명.창립자 겸 최대주주는 은행 설립을 위해 내탕금(황실재산) 3만원을 내놓은 고종 황제였다. 심상훈,민병석,이용익 등 고위 관료와 김두승,김기영,백완혁 등 상인들은 은행 설립을 청원하고 주주로 참여했다.

우리은행이 창립 110주년을 맞아 오는 13일 은행사박물관에서 개막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 민족은행 특별전'은 대한천일은행 창립부터 해방 전까지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리다.

대한천일은행 창립청원서와 최초 정관,고종 황제의 어새(御璽) '칙령지보'와 백옥으로 만든 어보(御寶) '고종옥보',여섯 살 나이에 2대 은행장을 역임한 영친왕이 포함된 주주명부 '대한천일은행 좌목'과 그가 사용했던 식기류를 비롯해 유물과 사진 등 120점이 전시된다.

고종 황제를 도와 광무개혁을 추진했던 이용익(보성전문학교 창립자)이 러 · 일전쟁,을사조약,헤이그밀사 파견 등 긴박한 정세 속에서 은행 부행장을 역임했던 사실도 알 수 있다.

대한제국 시기 장관급 무관의 상의와 견장,국내 최초 은행지점이었던 대한천일은행 인천지점이 일본 상인에 맞서 민족 상인들이 조직한 인천신상회사와 동일 조직이었음을 밝혀주는 '신상회사 장정''대한천일은행 인천지점 개설 청원서'도 처음 공개된다.

민족 상인을 무력화시킨 조선통감부의 '백동화 무효에 관한 조치'에 대해 상인들은 철시하고 대한천일은행은 휴업으로 항거했던 일,국채보상운동 자금이 대한천일은행에 숨겨져 있었던 사실과 이로 인해 한 · 일합병 후 총독부에 의해 은행 이름이 조선상업은행으로 강제 변경당한 사실도 보여준다. 6월5일까지.(02)2002-5095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