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이 중심을 잡아 먹는 첫 번째 단계는 당연한 것을 당연시하지 않는 것이요,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다. 거꾸로 한번 익숙해진 것에 만족하지 않는 것은 강자가 약자를 따돌리는 방식이다.

포드가 1913년 4월 디어본의 하이랜드파크 공장에 처음 선보인 이동식 조립 라인과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은 사실 시카고의 도살장 시설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도살장 천장에 설치된 고가 이동활차(trolleys)를 통해 도살된 고기가 이동하는 광경이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뒤흔든 '포디즘'의 원천이었다. 포드는 이것 한방으로 20세기 초 전 세계 자동차시장의 절반을 장악하는 기염을 토했다.

1993년 신경영을 선언했던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7-4제(오전 7시 출근,오후 4시 퇴근)'를 들고나온 것도 실은 업무효율 때문이 아니라 아래(변방)로부터의 자발적인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이 주창한 혁신이 상투적인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룹 총수로는 이례적으로 48회에 걸쳐 총 350시간에 달하는 열정적인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소니 도시바 등은 삼성을 괄목상대하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변방 중의 변방이 세계 최고로 뒤바뀐 가장 극적인 사례는 한국의 조선업이다.

1960년대까지 한국은 1만7000t이 넘는 대형 배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다. 1970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미포만 모래사장의 항공 사진을 들고 그리스에서 26만t짜리 선박 2척을 수주해 왔을 때 많은 이들은 망신만 당할 것이라고 걱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변방은 중심부의 현상유지(고착) 논리가 강하지 않다는 점에서 훨씬 유연하다. 1984년에 개발된 이른바 '정주영 공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산 간척 당시 물살이 거세어 기존 공법으로 도저히 둑을 막을 수 없게 되자 정 회장은 울산 앞바다에 묶여 있던 폐유조선을 가라앉히는 아이디어로 공사를 성공시켰다. 이는 소위 '정주영 공법' 또는 '유조선 공법'으로 세계에 알려졌으며 이후 영국 런던 템즈강 상류 방조제 공사를 맡은 세계적인 철구조물 회사에서 문의해 오기도 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