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소설가 김유진씨(28)는 첫 소설집 《늑대의 문장》(문학동네)에서 기괴한 죽음을 시(詩)처럼 펼쳐보인다. 표제작 <늑대의 문장>에서는 지뢰가 터지듯 사람이 갑자기 폭발해 죽어나가는 폭사(爆死)가 전염병처럼 맴도는 동네를 보여준다. <마녀>에서는 잦은 돌풍이 사람들을 허공으로 쓸어가는 마을을 그린다.

그런데 김씨의 관심은 인과율(因果律)을 무시하며 닥쳐오는 죽음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공포심이나 잔혹한 풍경을 비껴간다. 풀 수 없는 현실을 무력하게,혹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기묘한 아름다움에 주목한다. 김씨는 "거대한 혼란과 죽음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들이 귀하고 아름답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죽음에 관심이 많았어요. 큰 고비나 실패를 겪을 때 관념적으로 '죽을 지경'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이처럼 살면서도 죽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봐요. 그런데 죽음을 삶의 대안이나 고비로 본다면 굳이 두려워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저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들에게 경도됐고,그들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

그래서 죽음을 다루는 그의 선명하고 강렬한 표현에서는 의외로 피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문학동네신인상 수상작인 <늑대의 문장>에서 폭사의 뒷수습을 '밥을 푸듯 땅바닥에 널려 있는 시체를 퍼날랐다'고 묘사하지만 전체 맥락에서 보면 묘하게 시적이다. 무차별적 죽음 앞에서 극렬한 분노를 품는 사람들과 달리 '기이한 현실이 일상이 되자 십대 특유의 변덕으로 곧장 지루함을 느낀' 소녀에게 죽음,어둠은 삶의 대안처럼 다가온다. '그 무성한 숲속에서 늑대가,온전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유일하게 어둠을 지킬 것이라고 소녀는 굳게 믿었다. '

돌풍에 대비해 일부러 심은 넝쿨에 뒤덮여 '하수구에 뭉쳐 있는 머리카락과 비슷한' 집들이 있는 마을에 사는 딸에게 바람에 날려간 엄마의 푸른 발목만이 돌아온다. 죽음이 일상이 된 섬뜩한 현실에서 딸은 의연하다. '오로지 죄책감만이,썩지 않고 살아남았다. 나는 소처럼 일했다. 그리고 오래오래 살 것이었다. '

<움>에서 대부분 요절하는 일족의 일원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짧았던 생애의 가장 좋았던 부분만을 기억했다. 기억 속에서 그들은 영원히 젊었다. 그리하여 기억 속에서,일족은 언제나 강하고 아름다웠다. '

만연한 죽음을 '실족사'라는 공식적 이유로 설명해야 하는 마을을 다룬 <목소리>에서 죽음을 관조하는 '나'는 차라리 '완전한 어둠 속이라면 우리는 좀더 안온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는 죽음을 관찰하고 버텨낼 수 있는 원동력인 이야기의 힘이 부각된다. '소녀가 시가 되길 원했다. 그런 식으로,나는 우리의 참혹을,참혹이 아닌 듯 견뎌내고 싶었다. '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