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있는 모습이지만 일본은 때 아닌 '5월 위기설'로 뒤숭숭하다. 4월 말부터 주요 기업과 은행들의 적자결산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의 파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5월에 일본 주가가 폭락하고,기업들의 도미노 파산이 이어질 것이라는 게 위기설의 골자다. 일본 정부도 이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경기부양책과 기업자금 공급 대책을 준비하는 등 긴장의 끈을 풀지 않고 있다.

5월 위기설의 출발점은 이달 말부터 시작되는 주요 기업들의 결산 실적 발표다. 대부분 기업이 3월 말 결산인 일본에선 4월 말부터 5월에 걸쳐 지난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의 경영 실적이 공표된다. 도요타자동차는 5월8일,파나소닉은 5월15일 실적을 내놓는다. 이때 상당수 기업의 실적이 예상보다 나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우려다.

실제 미쓰비시UFJ 미즈호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등 3대 은행은 당초 흑자를 낼 것으로 기대됐으나 최근엔 총 1조엔(약 13조원)의 손실이 난 것으로 분석됐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3900억엔의 최종 적자를 냈다고 이미 발표했다. 이렇게 실적이 나쁜 기업이 속출하면 주가는 폭락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주가 급락은 시중은행들에 직격탄이다. 일본 은행들은 상호 보유 형태로 기업 주식을 대거 갖고 있다. 기업 주가 폭락은 은행들의 보유 주식 평가손실을 키운다. 다이와종합연구소에 따르면 6대 시중은행의 보유 주식 평가손은 지난 3월 말 3400억엔에 달했다. 주식 평가손은 은행들의 자기자본을 갉아먹는다.

자기자본비율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지켜야 하는 은행 입장에선 기업대출을 조일 수밖에 없다. 자기 살 길이 급한 은행들이 기업들에 대출 만기연장을 해주지 않고,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도리가 없다. 가뜩이나 매출 감소로 고전하는 기업들의 자금줄까지 막히면 줄도산은 불가피하다. 금융시스템과 실물경제가 동시 붕괴되는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게 '5월 위기설'의 흉흉한 시나리오다.

일본 정부도 위기설을 부인하지 않는다. 요사노 가오루 재무 · 금융상은 지난 10일 "5월이 고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3%에 달하는 15조엔(약 2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지난 주말 발표하고,주가 급락에 대비해 공적자금을 최대 50조엔까지 쓸 수 있는 '증시안전판'을 마련키로 한 것도 위기 가능성에 대비해서다.

그러나 이런 대책들의 핵심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돼야 실행이 가능하다. 야당이 과반수 의석을 장악하고 있는 참의원(상원격)에서 부결되면 상당수 대책은 물거품이 된다. 에구치 가즈키 데이코쿠데이타뱅크 도쿄지사장은 "야당이 경기부양책 등에 반대해 국회 의결이 늦어지면 '5월 위기'를 재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