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정기인사 때 영업부에서 인사부로 옮긴 김 과장.발령이 나자마자 곳곳에서 축하 인사를 받았다. "임원은 떼어 놓은 당상이니 거하게 쏘라"는 '압력'도 쇄도했다. 정작 김 과장은 기쁘지 않았다. 끗발 있는 부서에 입성해 임직원들의 살생부를 쥐락펴락하게 됐다고 생각하는 건 올드보이들의 생각일 뿐이다. 암암리에 존재하는 사내 파벌을 파악하고 안팎에서 쏟아질 각종 민원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무엇보다 야근을 밥먹듯이 해야 하는 게 가장 꺼려진다.

직장 내 '인기 부서'에 대한 관념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인 인기부서는 새로 떠오르는 부서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반면 대표적인 기피부서가 김 과장과 이 대리들의 관심을 잡아끌고 있다.

◆출세가 최고라고? 몸값이 최고다

은행에서 전통적으로 잘나가는 부서는 인사부,기획부,비서실,검사부 등이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그랬다. '인 · 기 · 비 · 검' 부서만 거치는 직원들은 '로열 패밀리'로 불렸다. 이들은 인 · 기 · 비 · 검 부서와 해외 점포 및 노른자위 점포장 자리를 회전문식으로 거치면서 임원자리에 오르곤 했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게 전통이었다. 아무리 일이 고달파도 참을 만했다. 언제나 승진에서 선두를 달리니 '그깟 고생쯤이야'였다.

지금은 달라졌다. 요즘 은행원들은 비서실,인사부,기획부에 가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비 · 인 · 기'부서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대신 투자은행(IB),프라이빗뱅킹(PB),외환,원화 및 외환 트레이딩,상품개발 부서를 선호한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로 IB나 PB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많이 수그러들었다. 그렇지만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이들 부서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하다.

[金과장 & 李대리] 뜨는 부서, 지는 부서‥선호 부서…'비·인·기' 지고 '자·상·해' 뜬다
이들 부서가 각광 받는 것은 성과에 걸맞게 돈을 벌 수 있거나,전문성 덕분에 몸값을 높여 이직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성과급 체계가 명확한 증권회사는 은행보다 부서에 대한 호 · 불호가 더욱 뚜렷하다. 증권사 직원들은 IB,자산운용,리서치 등 돈 되는 핵심 부서에서 영업지원 부서로 밀려나면 대부분 짐을 싼다. 다른 회사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보험사도 마찬가지다. 이직시장에서 몸값이 높은 언더라이팅(보험계약 심사) 부서나 상품 개발부서에 대한 선호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 회사에서 '출세'하기보다는 전문성을 길러 자신을 원하는 회사를 찾아가겠다는 직장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 것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잘나가는 재무통이라고? 줄 대서 해외영업으로 옮겼다

인기부서와 기피부서는 업종별로 다르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인기부서인 재무 · 인사부서에 대한 선호도가 수그러들고 있는 것은 어느 업종에서나 공통적인 현상이다. 전자 회사에 근무하는 송모 과장(37).그는 입사 이후 줄곧 재무파트에서 근무했다. 그러다가 작년 말 '줄'을 대서 해외영업파트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송 과장은 해외에서 주재원을 해보는 게 꿈이다. 그것도 영업현장에서 글로벌 메이커들과 '맞짱'을 뜨고 싶다. 그런데 '재무통'이란 인식이 퍼지면서 해외근무 가능성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송 과장은 "재무파트에서 근무하면 출세길이 어느 정도 보장되지만 글로벌시장에서 뛰놀고 싶다는 욕구가 더 컸다"고 말했다. 전자업종에서는 해외영업파트나 상품기획 부서,마케팅전략 부서가 인기가 높다.

자동차업종에서도 해외마케팅과 해외 수출기획 등 해외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부서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물론 재무나 인사 등 전통적인 인기부서에 대한 선호도도 여전하다. 그렇지만 자신의 업무 분야에서 곧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부서를 선호하는 추세다.

조선업종에서도 해외 선박 수주를 담당하는 해외영업 부서가 인기다. 삼성중공업은 해외영업 분야인 조선해양영업실에 지원하는 직원이 많다. 신입사원 지원이나 인사이동 때 내부적으로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보일 정도다. 중공업과 화학업종도 비슷하다. 영업실적에 따라 성과급 규모가 달라지는 해외 및 국내 영업본부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기피부서라고? 오히려 '꽃보직'이다

인기부서가 있으면 기피부서도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눈에 띄지 않고 전문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부서가 기피부서 1순위로 꼽힌다. 은행과 증권사에서는 실적이 바닥권인 영업점과 영업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각종 지원부서가 기피부서로 얘기된다. 보험사 직원들은 보상팀을 꺼린다. 사고를 당한 개인 고객을 달래고,사고 상대방과 언쟁까지 벌여야 하는 중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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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기피부서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있다. 과거엔 한직으로 통했지만 '꽃보직'으로 꼽히는 부서도 있다. 회사의 돈벌이와 관련이 없는 시설지원 부서나 안전관리 부서가 대표적이다. 연수원도 비슷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부서에 발령나면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도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며 즐기는 직원도 상당하다.

기피부서가 뚜렷하지 않은 곳도 있다. 건설업계의 현장근무가 대표적이다. 현장근무가 고된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임금은 본사 관리직보다 30~50%가량 많다. 그러다 보니 현장근무를 꺼리는 사람도 있는 반면 선호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해외근무도 마찬가지다. 오지의 경우 더욱 그렇다. 가족들과 떨어져야 해 상당수는 오지근무를 꺼린다. 반면 위험수당이 많아 젊을 때 경험 쌓는 셈 치고 오지근무를 자원하는 젊은 직원들도 많다.

◆경영진이 되고 싶다? 역시 기획부서다

기획이나 전략부서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지만 그 위세는 여전하다. 기업이 나아갈 방향과 먹을거리를 찾는 곳은 기획 및 전략부서다. 결국 기업 핵심 역량이 이곳에서 판가름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주요 대기업 총수들은 자녀 경영수업의 첫 관문을 기획전략부서로 정한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3형제들은 모두 경영전략본부 부장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상무도 경영기획팀에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도 6년여간 경영기획팀에서 일을 배웠다.

비서실 근무도 아직까지는 CEO(최고경영자)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자기 시간이 거의 없지만 CEO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회사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휘 우리은행장도 비서실장을 거쳤다. 이백순 신한은행장도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은행장이던 시절에 비서실장을 지냈다.

정인설/이정호/이상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