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도 에어컨이 팔린다고?

거짓말 같지만 진실이다. 1년 내내 추울 것 같은 모스크바에서도 호텔에는 에어컨 구비가 필수다. 이유는 간단하다. 혹한에 시달리는 모스크바 사람들은 낮은 온도에 적응해 있어 여름에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더위를 느낀다고 한다. 장규섭 LG전자 선임연구원은 이를 상대성으로 풀이한다.

장 선임은 사람들이 느끼는 '덥다''시원하다' 등의 감정은 상대적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마다 시원하다고 느끼는 온도가 각각 다르다는 것.그뿐만이 아니다. 나라마다 덥고 시원함에 대한 정도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예컨대 45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시달리는 중동 지역에서는 25도 정도의 온도는 더운 축에 끼지 않는다. 하지만 1년 내내 낮은 온도에서 사는 모스크바 사람들은 평상시 온도보다 1~2도만 높아도 무척 덥다고 느낀다.


◆각양각색 에어컨의 탄생

세계 각지에 에어컨을 팔기 위해선 이렇게 각 지역 특성에 맞춘 다양한 에어컨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제품이 LG전자가 최근 내놓은 '타이탄'.중동 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진 이 제품은 요즘 에어컨 트렌드와는 정반대로 기존 제품보다 크게 만들어졌다. 빠른 냉방을 원하는 중동 소비자들의 특성을 고려해 전원을 켜자마자 차가운 바람이 빠르게 뿜어져 나올 수 있도록 에어컨 몸체를 기존 제품의 두 배 정도로 키웠다. 미세 먼지를 거르는 필터 기능도 강화했다. 건조한 기후에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사막의 미세 먼지로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을 고려했다. 공기청정기와 가습기 역할을 하는 '에어크루저'를 설치해 공기를 정화하고 적정한 습도를 맞출 수 있도록 만들었다.

디자인도 확 바꿨다. 중동의 부호층이 좋아하는 황금빛 색상에 아랍의 전통 문양을 입혔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하기 위해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도 달았다.


◆태국에선 누드 에어컨

LG전자는 태국 소비자들이 공기청정 기능에 관심이 높다는 점에 착안,전시장을 새롭게 꾸몄다. 매장에 전시하는 에어컨의 전면을 투명한 패널로 바꿔 에어컨 내부를 매장에서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것.또 제품 용어를 태국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소비자 용어로 바꾸고 판매사원 교육을 강화했다.

태국 시장에 맞도록 제품도 개발했다. 2년여에 걸쳐 만든 '헬스플러스'는 일반 에어컨보다 건강관리 기능을 강조했다.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걸러 내는 공기청정 필터인 '안티알러지'를 장착했다. 이현우 LG전자 태국법인장은 "소비자를 사로잡는 제품 출시로 전년 대비 매출을 20%가량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에선 '인디안 글로리'로 승부

날씨가 덥고 습하기까지 한 인도에선 거실과 방 천장에 환기를 위한 '실링 팬'이 붙어 있다는 점을 눈여겨봤다. 한밤중에도 일어나 실링 팬을 돌리기 위해 스위치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야 하는 인도 소비자들의 생활 습관을 고려해 LG전자는 실링 팬 조작을 에어컨 리모컨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놨다.

에어컨과 실링 팬을 한번에 조작할 수 있도록 한 이 아이디어 제품은 인도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LG전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인도인들이 선호하는 꽃 문양을 에어컨에 새긴 '인디안 글로리' 제품을 내놓으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선 조류독감 퇴치도

조류독감이 성한 인도네시아에선 바이러스 필터 기능을 에어컨에 채용해 에어컨 매출을 전년 동기 대비 15%나 늘렸다. 바이러스마저 걸러 낼 수 있도록 만든 에어컨이라는 마케팅에만 힘을 쏟지 않고 현지 대학과 연계한 연구 작업도 벌였다. 조류독감 연구로 현지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인도네시아 국립 보고르 대학 연구소에 조류독감 퇴치 연구를 맡겼다. 그 결과 LG전자는 에어컨 가동만으로 조류독감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인증을 받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조류독감 환자가 유난히 많은 인도네시아 현지 상황을 감안해 에어컨에 조류독감 살균 기능을 추가한 제품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