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우리의 소원'이 이뤄졌다. 두 동강났던 한반도는 이제 하나다. 그런데 사실 통일은 판도라의 상자였나 보다. 상자가 열리자마자 수천의 마귀가 튀어나왔다. 무기 회수에 허술했던 탓에 통일 대한민국에서 총기는 도난 차량보다도 구하기가 쉬워졌다.

남한 전역의 유흥가는 '북한 여성 항시 대기'라는 문구로 취객을 유혹하고,국방 장관은 북한 출신 술집 아가씨의 단골 손님이다. 주민등록이 없는 북한 사람들은 '대포 인간'이 되어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다. 북한 120만 대군은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도시 하층민이 된다.

통일 후 도래한 어두운 신세계를 다룬 《국가의 사생활》(민음사)을 발표한 소설가 이응준씨(39)는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설을 한줄로 요약한다면 '통일이 되어 우리는 불행하다. 하지만 나는 너를 만나서 좋았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모르는)북한 사람들이 옆집에 살게 되는 날 벌어질 일이 남한 사람들에게 핵폭탄보다 무서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북한에서 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잖아요. 그건 우리가 북한을 사람이 아닌 관념으로 받아들여서입니다.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고민해본 적이 있나요. 이들을 찬찬히 바라보는 게 통일의 시작이 아닐까요. "

그래서 이씨는 통일이 초래한 암흑을 온몸으로 헤쳐나가는 개인 리강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제목도 '국가의 사생활'이라고 붙였다. "민족의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을 미시적인 거울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지금도 부딪칠 수 있는 실존적인 고민을 다뤄 보았습니다. " 그래서 소설의 배경도 현 시점에서 멀지 않은 2016년이다. 남북통일이 된 지 5년 후의 이야기다. 통일 이후 5년 만에 서울은 어디를 가든 상처 입은 것이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이 가득한 도시로 전락한다. 그 서울에서 독립운동가의 손자이자 인민군의 영웅이었던 리강은 이북 출신들이 모여 만든 폭력 조직 '대동강'의 핵심 인물이 된다. 그는 동료의 수상쩍은 죽음을 조사하다가 예상치 못한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소설이 영화관이 되길 바랐다"는 이씨의 소망처럼 《국가의 사생활》은 영화처럼 술술 흘러간다. 느와르를 바탕에 깔고 가상 역사와 추리,스릴러,멜로,액션 등 여러 장르를 혼합해 무거운 주제를 받쳐낸다. 통일 이후를 다룬 이유도 느와르에 걸맞은 배경을 찾아 내린 선택이다.

리강은 통일 이후 나타난 아수라장에 빠져 만신창이가 되지만,그에게 통일은 딱 하나 긍정적인 역할을 하긴 했다. 극한 상황을 체험하고 나서야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씨는 "최인훈 선생님의 《광장》에서 주인공은 남북이 쪼개진 후 바다에 투신하지만 나는 이를 좀 비틀어 희망을 남겨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결국 통일은 판도라의 상자가 맞았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