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뜸해졌지만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지하철에서 노인들이 무가지 등을 열심히 모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들이 힘들게 모은 폐신문지 등은 귀중한 재활용 자원으로 쓰인다. 하지만 고물상 등에 넘기는 가격은 너무나도 싸다고 한다.

국내 제지업계는 2007년 '중국발 폐지(廢紙) 싹쓸이'로 심한 홍역을 앓았다. 내수가격보다 비싼 값에 폐지가 대거 중국으로 수출되면서 품귀현상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그 해 폐지의 대중국 수출물량은 무려 31만t으로 전년도보다 3배 이상 증가하면서 연초 t당 8만원 선에 불과하던 폐지가격은 19만원 선까지 치솟았다. 일부 제지업체들은 비싼 돈을 주고도 물량을 구하지 못해 부분적으로 공장을 세우기까지 했다.

저탄소 녹색성장이 화두인 요즘,재활용 산업의 중요성이 한층 커지고 있다. 한때 쓰레기에 불과했던 폐지나 플라스틱 유리 고철 등 생활 · 산업폐기물이 '자원'으로서 가치가 증대되고 있는 것.이들 폐기물의 재활용이 늘어날수록 지구환경은 그만큼 보호되는 셈이다. 특히 온실가스 감축을 통해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교토의정서'가 2005년 발효되면서 우리나라도 2013년께부터 온실가스 의무 감축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철강 자동차 등 에너지 다소비업종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화석연료를 청정연료로 대체하는 CDM(청정개발체제)사업이나 조림을 통한 탄소배출권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폐지의 재활용은 산림 자원의 훼손을 줄여줘 온실가스를 감축시켜 주는 효과를 낸다. 서울대 산림과학부의 '폐지 재활용을 통한 온실가스 배출 저감효과 분석'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폐지 1t을 재활용하면 0.91t의 이산화탄소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근거로 한국제지공업연합회는 국내 제지산업은 지난해 911만t의 폐지를 재활용해 830만t의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이를 조림면적으로 환산하면 수령 30년생인 한국산 리기다 소나무 4만9000㏊에서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에 해당된다. 또 우리나라의 지난해 폐지 회수율은 83.3%로 일본 미국 대만 등 제지산업 규모가 세계 10위권 이내인 국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런데도 정부에서는 폐지를 '쓰레기'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게 업계의 항변이다.

제지업계는 폐지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지난해 초 폐지업계와 자발적으로 수급 안정을 위한 유통법인까지 세웠다. 그러나 최근 들어 폐지 수출이 다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식경제부에 일시적으로 폐지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조항의 마련을 요청했으나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업계는 정부가 재활용산업을 강조하면서도 폐자원이 해외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폐지 파동의 피해는 결국 종이 가격의 상승을 초래해 관련 업계는 물론 소비자들에게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비록 제지산업의 비중이 전체 국가 제조업 생산량의 0.8%에 불과하지만 국민 실생활의 기여도는 적지 않다. 가뜩이나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위축으로 업계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대책이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