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재임시절 굵직굵직한 난제를 잇달아 처리해 '해결사'란 별명을 얻은 앤 크루거 전 IMF 부총재(75)는 "급속히 악화되던 세계 경제가 최근 안정된 듯 보이지만 여전히 변수는 많다"며 "올해 중반쯤 상황이 바뀌었다는 신호가 확인되면 바닥을 쳤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루거 전 부총재는 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장과 가진 대담에서 "최근 개방경제에 대한 공격이 강해지고 있지만 경제위기를 해쳐나가는 방법은 보호주의를 배격하고 개방경제 기조를 확대하는 데서 근본 처방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루거 전 부총재는 2006년 IMF 수석 부총재에서 물러난 뒤 현재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에서 교수를 맡고 있다. 대담은 박태호 원장의 질문에 크루거 전 부총재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전망을 말해달라.

"나쁜 뉴스가 더는 나오지 않는 것 같다. 현재 상황은 약간 진정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주택가격도 안정되고,사람들은 점차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낙관적인 사람들은 올 여름부터 경제가 반등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몇 가지 주요 경제지표의 반전과 상승이 그것이다. "

▼그렇다면 이제 세계 경제가 바닥을 쳤다고 볼 수 있나.

"물론 봄이 왔다는 신호는 있지만 서리가 내릴 가능성에 주의해야 한다.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조금만 부정적인 충격이 나와도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1~2분기가 더 지나 실업률 개선이나 총수요(소비) 진작 등이 나타나면 확실하게 회복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글로벌 경제위기에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가졌다. 이에 대한 평가는.

"각국이 경기부양책과 금융규제에 관해 얘기했다. 아직 구체적인 성과를 논하기는 이르다. 지난해 11월 첫 모임에서 보호주의 반대를 논의했지만 20개국 중 17개국에서 보호주의 조치를 취했다. 반면 이번 런던 G20 정상회의는 보호주의 배격에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고 생각한다. IMF의 기금 규모를 확충한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

▼IMF 개혁도 주요 의제가 됐었는데.

"의결권 배분이 핵심인데 문제는 지분을 잃고 싶어하는 국가가 없다는 데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은 자신들의 지분을 늘리고 싶어한다. 반면 유럽과 미국은 자신의 몫을 줄이기 싫어한다.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만큼 의결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중국이 기축통화인 달러화에 의문을 제기했다.

"중국으로선 기축통화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나름 타당하다. 많은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건설적인 문제 제기라고 여겨진다. "

▼최근 경제위기에 대한 각국 정부의 강력한 대처로 '자본주의의 종말'까지 거론되고 있다. 규제완화와 개방경제에 대한 공격이 강해지고 있다.

"지난 60여년간 계속된 논쟁이다. 세계는 지금까지 개방경제 덕분에 크게 성장했다. 이제 '더이상 성장하지 않겠다'거나 '경제개방으로 성장하는 방식을 그만두겠다'라고 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개방은 경제를 성장시키고 많은 것을 바꾼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개방 대신 무조건 안정된 경제만을 원한다면 현재의 미얀마와 같은 상태를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한국의 경우 다른 부분에 비해 자본시장을 지나치게 많이 개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정부가 자본시장을 일정 부분 닫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아니면 계속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자본시장을 닫는 방안을 선택하는 것은 게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자본시장 개방은 '큰 판'에 참여하는 것이다. 물론 큰 무대에서 질 수도 있지만 자본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면 수많은 기회를 송두리째 잃어버릴 것이다. 이런 무대를 포기하는 것은 기업과 개인에게 엄청난 손해다. 이와 함께 무역시장을 개방하면 자본시장의 자유화는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다. 돈이 상품보다 훨씬 더 빨리 움직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이 자유화되지 않았다면 무역은 엄청나게 비효율적이 될 것이다. "

▼현재의 경제위기가 국제무역 질서를 어떻게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나.

"보호주의 근절이 세계경제 회복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확산시킬 것이다. 보호주의를 주장할수록 세계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리더십 발휘를 기대하고 있다. "

▼한국경제에 대한 예측을 해달라.

"세계경제 위기로 무역에서 타격을 입는 측면이 있다. 또 주어진 환경이 좋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단기부채를 갚을 수 있는 금융 자원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

정리=김동욱/조귀동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