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미래 전략이 그 윤곽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강조해온 '소프트 파워' '서비스 경쟁력 강화'라는 전략이 보다 구체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삼성은 15일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등과 함께 일본 교토의 닌텐도 본사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표면적인 이유는 닌텐도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

삼성전자는 닌텐도 게임기에 들어가는 낸드플래시 등을 납품하고 있다. 하지만 단일 고객사를 관리하기 위해 삼성전자 수뇌부가 총출동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재계 관측통들은 이번 방문이 향후 삼성의 새로운 전략의 한줄기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진단하고 있다.

◆사업구조 재편의 방향타



요즘 삼성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등의 경기 사이클이 아니다. 상상력과 창의성이 미래 부가가치의 원천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대에서 언제까지 대규모 장치사업에 경기 부침까지 심한 업종을 주력으로 삼고 살아가야 하느냐는 고민을 화두(話頭)로 틀어안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통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게 사실이지만 5년,10년 뒤에 나타날 산업의 새로운 흐름을 생각해보면 지금 같은 중후장대(重厚長大) 사업군으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컴퓨터 제조회사의 대명사였던 IBM은 비즈니스 컨설팅 및 IT솔루션 회사로 변모했고,휴대폰 단말기 세계1위 사업자인 노키아도 미디어서비스 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삼성 고위 경영진이 닌텐도를 방문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주목된다. 향후 사업 경쟁력 강화의 중심축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옮겨갈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닌텐도는 주력 제품인 '닌텐도DS'와 '닌텐도 위(Wii)' 등 창의적인 게임을 기반으로 게임기를 가족이 함께 즐기는 생활정보 기기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닌텐도의 창의성은 삼성이 추구하는 창조경영과 맥이 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닌텐도는 화투 제조회사로 시작해 비디오게임 시장을 만들었고,젊은이들의 전유물이던 게임을 가족문화생활로 바꿔놓는 등 역발상 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전무가 만난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닌텐도로부터 외주를 받아 게임을 만들던 협력업체 프로그래머에서 세계적 기업의 최고경영자로 발탁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일본을 다시 배운다

이 전무는 닌텐도에 이어 16일에는 이 부회장과 함께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회장을 만나 협력 강화방안을 논의한다. KDDI 등 통신업체를 방문할 때는 최지성 사장과 동행한다. 캐논 도시바 소프트뱅크 NEC 등 고객사들도 잇따라 방문할 예정이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은 일본 업체들의 지원 및 이들과의 협력,경쟁을 통해 성장해왔다"며 "어려운 시기일수록 우방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일본 고객사들을 방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업계에는 소니가 협력사인 삼성이 아닌 LG디스플레이로부터 LCD 패널을 공급받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삼성과 소니와의 관계가 예전같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 등 국내 전자업체들이 급성장하면서 소니뿐 아니라 일본 전자업계 전반에 한국 업체에 대한 경계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서도 닌텐도가 화제였다. 주제발표를 한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은 "세계 35개 글로벌 기업의 위기대응 전략을 분석한 결과 탄탄한 재무 구조와 브랜드 가치 등 소프트 경쟁력을 기반으로 공격 경영에 나선 회사는 닌텐도와 애플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닌텐도와 애플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구조조정 등을 통해 생존을 우선시하는 '선(先) 수비,후(後) 공격'의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