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이동주조 '제2 전성기'] 日특수로 막걸리 부족…새벽길 달려와 '더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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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맞추려 아침5시부터 풀가동
현황판엔 日수출 물량 빼곡
일본 관광객ㆍ여행사 견학도 줄이어
현황판엔 日수출 물량 빼곡
일본 관광객ㆍ여행사 견학도 줄이어
지난 10일 오전 8시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이동주조 입구.대한민국 예비역 남자들이라면 대부분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군대 막걸리인 이동막걸리를 생산하는 업체다. 주조 공장에 다가갈수록 특유의 막걸리 향이 콧속으로 진하게 흘러들어왔다.
한적한 시골마을 길은 이른 아침부터 트럭들로 메워져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이동막걸리 총판 차량들이다. 일본 수출물량 급증으로 국내 공급이 달리다 보니 너도나도 먼저 막걸리를 받아가기 위해 새벽길을 달려온 것이다. 이렇게 아침부터 진을 치다 보면 가끔씩 총판들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공장 안쪽은 아침부터 일본어 상표가 인쇄된 막걸리 포장박스를 컨테이너에 싣느라 분주하다.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생산라인은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2교대로 가동되고 있다. 사무실 한켠에 위치한 수출현황판에는 날짜별로 일본으로 보낼 수량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해두신 일이 이제야 제대로 빛을 보는 것 같네요. "
하명희 이동주조 이사(여 · 60)는 요즘 일본으로 실려나가는 막걸리 박스를 보며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고 했다. 하 이사의 부친인 고(故) 하유천 전 이동주조 사장(2001년 작고)은 1957년 지금의 포천 백운계곡 근처에 전국 최초의 막걸리회사를 세웠다.
하지만 이동막걸리는 1980년대 이후 침체기를 맞았다. 소주가 '국민 술'로 자리매김한 데다 맥주까지 대중화되면서 막걸리는 농촌이나 공사장 등의 새참거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경기북부와 강원도 서북부의 군대에서 장병들의 회식용으로 인기를 끈 게 위안이었다. 이동막걸리의 명성은 이 지역에서 병역을 마친 예비역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졌다. 그러나 판매량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자 하 사장은 해외로 눈을 돌렸고 1992년 일본 지사를 설립했다. 하 이사는 "당시만 해도 주변에서 '한국 젊은이들도 찾지 않는 막걸리를 일본에 수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말렸다"고 회고했다.
지금 와서 보면 고인의 혜안(慧眼)이 놀라울 뿐이다. 하 사장이 작고한 지 2~3년 후부터 막걸리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이동막걸리의 일본 수출량은 매년 20~30%의 신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수출물량만 4000t,올해는 5000t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동주조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에 달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의 주 고객은 맥주와 와인을 즐기던 젊은 여성들이다. 막걸리의 알코올도수가 6~8도로 부담없는 데다 맛이 달콤하다는 점이 일본 여성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글라스 와인처럼 레스토랑에서 1만원 안팎의 잔 막걸리를 따로 내놓는 곳도 있다.
인기가 높아지다 보니 요즘 이동주조에는 일본 관광객과 여행사의 견학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일본 관광객이 본사까지 직접 찾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번은 한 일본 여성 관광객이 서울에서 포천시 이동면까지 70㎞ 거리를 혼자 택시를 타고 찾아온 적도 있었다고.
이동주조는 지난해 새로운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등 일본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국시장 개척에도 주력하고 있다. 다른 지역 막걸리 업체와 전통주 업체들이 일본 진출에 나서면서 경쟁이 가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 이사는 "돌아가신 부친의 성과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겠다"며 "막걸리를 아시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술로 키워낼 것"이라고 말했다.
포천=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한적한 시골마을 길은 이른 아침부터 트럭들로 메워져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이동막걸리 총판 차량들이다. 일본 수출물량 급증으로 국내 공급이 달리다 보니 너도나도 먼저 막걸리를 받아가기 위해 새벽길을 달려온 것이다. 이렇게 아침부터 진을 치다 보면 가끔씩 총판들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공장 안쪽은 아침부터 일본어 상표가 인쇄된 막걸리 포장박스를 컨테이너에 싣느라 분주하다.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생산라인은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2교대로 가동되고 있다. 사무실 한켠에 위치한 수출현황판에는 날짜별로 일본으로 보낼 수량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해두신 일이 이제야 제대로 빛을 보는 것 같네요. "
하명희 이동주조 이사(여 · 60)는 요즘 일본으로 실려나가는 막걸리 박스를 보며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고 했다. 하 이사의 부친인 고(故) 하유천 전 이동주조 사장(2001년 작고)은 1957년 지금의 포천 백운계곡 근처에 전국 최초의 막걸리회사를 세웠다.
하지만 이동막걸리는 1980년대 이후 침체기를 맞았다. 소주가 '국민 술'로 자리매김한 데다 맥주까지 대중화되면서 막걸리는 농촌이나 공사장 등의 새참거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경기북부와 강원도 서북부의 군대에서 장병들의 회식용으로 인기를 끈 게 위안이었다. 이동막걸리의 명성은 이 지역에서 병역을 마친 예비역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졌다. 그러나 판매량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자 하 사장은 해외로 눈을 돌렸고 1992년 일본 지사를 설립했다. 하 이사는 "당시만 해도 주변에서 '한국 젊은이들도 찾지 않는 막걸리를 일본에 수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말렸다"고 회고했다.
지금 와서 보면 고인의 혜안(慧眼)이 놀라울 뿐이다. 하 사장이 작고한 지 2~3년 후부터 막걸리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이동막걸리의 일본 수출량은 매년 20~30%의 신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수출물량만 4000t,올해는 5000t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동주조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에 달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의 주 고객은 맥주와 와인을 즐기던 젊은 여성들이다. 막걸리의 알코올도수가 6~8도로 부담없는 데다 맛이 달콤하다는 점이 일본 여성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글라스 와인처럼 레스토랑에서 1만원 안팎의 잔 막걸리를 따로 내놓는 곳도 있다.
인기가 높아지다 보니 요즘 이동주조에는 일본 관광객과 여행사의 견학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일본 관광객이 본사까지 직접 찾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번은 한 일본 여성 관광객이 서울에서 포천시 이동면까지 70㎞ 거리를 혼자 택시를 타고 찾아온 적도 있었다고.
이동주조는 지난해 새로운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등 일본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국시장 개척에도 주력하고 있다. 다른 지역 막걸리 업체와 전통주 업체들이 일본 진출에 나서면서 경쟁이 가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 이사는 "돌아가신 부친의 성과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겠다"며 "막걸리를 아시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술로 키워낼 것"이라고 말했다.
포천=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