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에는 이종교배 이론과 맥이 닿아 있는 우화가 등장한다. 협력을 통해 높은 나무에서 과일을 따는데 성공한 장님과 앉은뱅이의 얘기다. '눈'과 '다리'라는 두 사람의 이질적인 장점을 결합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이다.

기업 세계의 승자들도 이종교배의 역사를 갖고 있다. 독일의 대표 기업인 지멘스가 대표적인 예다. 유럽 가전업계의 역사는 지멘스와 AEG의 '100년 전쟁'으로 요약된다. 두 업체는 조명,발전설비,가전 등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경쟁해 왔다.

두 업체의 희비가 엇갈리기 사작한 것은 1967년이다. 지멘스는 자동차 부품업계의 강자인 보쉬와 50 대 50의 비율로 투자해 합작사 '보쉬-지멘스'를 만드는 승부수를 띄운다. 보쉬의 기술력과 단순해진 사업 포트폴리오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고 AEG와의 격차는 점차 벌어졌다. 1994년 AEG는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웨덴 일렉트로룩스에 매각됐다.

일시적인 필요에 따라 일어나는 기업 간 제휴 중에서도 이종교배의 묘를 살린 사례들이 많다. 펩시콜라는 미국에서 캔 홍차의 수요가 급증했던 1990년대 홍차 전문업체인 립튼과 제휴를 맺고 공동으로 캔 홍차를 출시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펩시의 역할은 콜라를 통해 축적한 마케팅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립튼은 홍차 제조와 마니아층 공략을 전담했다.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에도 같은 방법이 동원된다. 1996년 면역의약품 분야에 강세를 보이고 있던 산도스와 아동용 의약품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던 시바가이기는 합병을 선언하고 노바티스라는 새로운 기업을 출범시켰다. 합병 초기만 해도 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업계 순위 12위와 16위 기업들이 뭉친다고 업계 질서를 흔들 수 있겠느냐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두 회사는 합병 후 내놓은 신제품들을 바탕으로 염증 치료제와 신경 치료제,호르몬제 시장에서 각각 1,2,3위에 오를 수 있었다. 판매 제품을 축소하고 중복 제품을 없애면서 얻은 15억달러의 경비 절감 효과는 덤이었다. 현재 노바티스는 글로벌 톱3 제약업체 중 하나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