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굶는 백성이 수두룩할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던 조선왕조가 50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건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

은행 내 대표적인 '영업통'으로 지난달 17일 은행장이 된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최근 임직원들에게 '선비정신'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임금에게 고언을 서슴지 않았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기개를 은행원들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행장이 선비정신을 들고나온 것은 '곧은 선비들의 직언'과 같은 행동이 최근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때문이다. 은행 영업실적 독려에 쫓겨 직원들이 펀드 불완전 판매나 무모한 외형 확장,단기 성과주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굶어죽어도 곧은 말은 한다'는 선비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확대하라는 금융당국의 요구에 못이겨 부실기업에까지 돈을 빌려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독려의 의미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외부의 여건 변화와 관계없이 은행 임직원들이 스스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토론과 참여의 문화를 만들어 놓겠다는 복안이다.

조흥은행과 합병한 뒤 조직이 방대해진 상황에서 직원 간 소통을 좀 더 원활하게 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점도 영향을 줬다. 선비정신과 토참(토론과 참여)문화를 조성함으로써 직원 간 화합을 더욱 강화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옛 신한은행 시절에는 인원이 적었기 때문에 조직문화를 전파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했지만 조흥은행을 합병하고 그룹 전체적으로는 LG카드까지 인수하면서 조직이 커져 소통에 어려움이 생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행장은 실제로 사내 인트라넷에 '토참광장'이라는 사이트를 개설,신입 행원이라도 자유롭게 행장에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이 행장 스스로 가족사진 등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은행 경영에 대한 단상들까지 꾸준하게 글을 올리고 있다.

이 행장은 선비정신과 토참문화를 제도화하고 조직문화로 정착시키는 '데드라인'을 취임 100일로 잡고 다양한 실행방안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