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산 설탕처럼 달콤하고,향은 인도의 향신료를 능가하게 감미롭다. 그러나 위 속에 들어가면 불붙은 화약처럼 강한 화염을 내뿜는다. "

포트와인을 묘사하는 말이다. 포트와인은 프랑스의 샴페인에 비견되는 포르투갈의 대표 와인이다. 한참 발효 중인 포도즙에 독한 브랜디를 넣기 때문에,알코올 도수는 16~24도로 높고 발효되지 못한 당분이 남아 맛은 달달하다. 1756년 원산지 인증을 받은 포르투갈 북부 도우루강 인근 지역에서 전량 생산된다. 그러나 와인 명칭은 숙성과 수출이 이뤄지는 포르투갈 제2 항구도시 오포르투의 이름을 따왔다. '비뇨 도 포르투' '오포르투''포르투' 또는 단순히 '포트'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18세기 이전까지 포르투갈 와인은 약한 붉은색에 향이 짙은 반면 알코올 도수는 크게 높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포트와인이 탄생된 배경에는 유럽 패권을 놓고 매사에 부딪치는 영국과 프랑스가 있다. 1700년 합스부르그가의 스페인 왕 카를로스 2세가 후사가 없이 죽자 유럽은 왕위계승 문제를 놓고 두 진영으로 나뉘어 격돌한다. 바로 14년간 계속된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이다. 먼저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의 손자 필리프 앙주 공이 왕위에 올라 펠리페 5세가 된다. 그러나 스페인 합스부르그가와 재통합을 꿈꾸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 출신의 신성 로마제국 황제인 레오폴드 1세 역시 스페인 왕위계승권을 주장한다.

이때 영국은 이베리아반도에서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세력이 커지는 것에 불안을 느껴 네덜란드와 함께 오스트리아 진영에 합세한다. 동시에 프랑스로부터 와인 수입을 전면 금지한다. 전쟁 초기 프랑스 편에 섰던 포르투갈은 1703년 영국과 메수엔조약을 맺으며 지지 진영을 바꾼다. 이 조약으로 영국의 직물과 포르투갈 와인은 상대국에 수출할 때 낮은 특혜 관세가 부과됐다. 드디어 영국인들은 비싸고 귀해진 프랑스 와인을 대신할 값싸고 질 좋은 와인을 포르투갈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나 봇물 터진 듯 영국으로 대량 수출되던 와인들이 뜨거운 날씨 탓에 항해 도중 추가 발효되거나 상하는 문제가 생겼다. 효모에 의해 와인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국인들이 브랜디를 조금씩 섞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포트와인이 탄생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엷은색의 레드 와인은 초보들이 마시는 술이다. 진정한 남자가 되려면 포트를 마셔라'는 인용구처럼,포트와인은 매혹적인 붉은색에 알코올 도수도 높아 가장 남성적이고 섹시한 와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로 식후에 단맛이 많은 디저트나 향이 강한 블루치즈와 함께 잔 단위로 마시지만,화이트나 토니(Tawny) 포트처럼 종류에 따라서는 식전주로도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가장 소비가 많은 영국에서 술꾼들이 본격적으로 포트와인을 마시는 방법은 따로 있다. 식사가 끝나면 참석했던 여성들을 모두 방에서 나가게 한 뒤 켈트족의 오랜 전통대로 병을 오른쪽에서 왼쪽 시계방향으로 돌려가며 준비된 포트와인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모두 마신다. 이때 또 다른 남성의 전유물인 시가를 피워 물고,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포트는 장기 보관이 가능해 부유한 영국 귀족 중에는 자신의 손자들이 태어난 해에 생산된 포트와인을 상자째 주문해 그들이 성인이 되거나 결혼할 때 선물로 주는 관습도 있다.

포트와인은 포르투갈의 다양한 토종 포도로 만든다. 처음부터 병에 넣어 숙성시키는 것과 큰 나무통에서 일정 기간 숙성한 뒤 병에 담는 것 두 종류가 있다. 10년에 평균 3년 정도 작황이 아주 좋은 해에만 생산하는 빈티지 포트같이 병에서 숙성되는 것에는 침전물이 많다. 따라서 마시기 전에 디캔팅이 필요하며,일단 개봉하면 쉽게 산화되므로 되도록 빨리 마시는 것이 좋다.

한편 통속에서 일정 기간 숙성된 뒤 침전물을 걸러 병에 넣는 종류들은 숙성기간에 약하게 산화되고 나무통의 영향을 받아 특징적인 연한 황갈색을 띤다.

< 와인 칼럼니스트 · 여유공간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