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에 있는 삼성증권의 FH삼성타운지점은 최근 깜짝 놀랄 일을 겪었다. 이른바 '3월 위기설'이 기우로 끝나갈 시점이던 지난달 하순 50대 중반의 한 개인 큰손이 "주식에 투자하겠다"며 100억원의 거액을 들고 찾아왔기 때문이다. 프라이빗뱅커(PB)만 30명이 넘을 정도로 원래 강남권 일대 부자 고객들이 많은 지점이었지만 이렇게 한번에 큰돈을 투자하겠다는 고객이 나서기는 아주 이례적인 것이어서 지점 전체가 술렁거렸다.

거액 자산가들이 속속 증시로 돌아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보수적으로 자금을 굴리던 개인 큰손들이 주식과 채권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주식투자 대기 자금인 고객예탁금은 이달 들어 하루 평균 2200억원 넘게 늘어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FH삼성타운지점 한덕수 마스터PB는 "큰손들이 증시로 돌아오면서 우리 지점에서 운용하는 자금이 최근 불과 보름 사이에 500억원 이상 늘었다"고 귀띔했다.

◆1억원 이상 거액 주문 급증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1억원 이상 거액 주문 건수는 하루 평균 1만4125건으로 지난달보다 94% 급증했다. 올 1월 6798건, 2월 6099건, 지난달 7280건 등으로 늘어나던 추세가 이달 들어 더 가팔라졌다. 거래량 1만주 이상 주문도 3월에 비해 41% 증가했다. 개인 큰손들의 증시 복귀로 거액 주문이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고객예탁금은 지난달 2조6400억원 증가한 데 이어 이달에는 2조7000억원 늘어 지난 15일에는 16조472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개인 큰손의 귀환으로 증시에서 개인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달 유가증권시장의 개인 비중은 66.38%로 2005년 12월(66.80%) 이후 3년4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특히 코스닥시장 비중은 90%를 훌쩍 넘었다.

거액이 필요한 소매채권 투자도 활발하다. 동양종금,삼성 등 주요 10개사의 올 소매채권 누적 판매액은 8조4000억원에 달한다. 동양종금증권의 경우 작년 12월 2100억원에 그쳤던 월간 채권판매액이 지난달엔 5400억원으로 불어났고 이달 들어선 10일까지만 3200억원어치가 팔렸다.

◆증권 신규 계좌 6개월 새 100만개 넘어

개인투자자들도 직접투자로 몰려들고 있다.

코스콤에 따르면 주식위탁거래 시장점유율 상위 10개사를 포함한 국내 38개 증권사의 신규 증권 계좌 수는 지난해 10월부터 현재까지 6개월 사이에 모두 105만1624개나 증가했다. 신규 계좌 개설은 이달 들어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 지난 15일까지 10만개 이상 늘었다. 3월 전체 신규 계좌(16만0945개)의 70%에 육박한다. 대우증권은 1만1134개로 이미 지난달 전체 신규 계좌 수(7553개)를 넘었고 한국투자 미래에셋 현대 등도 지난달 신규 계좌 수의 80%를 넘었다.

개인투자자가 많은 키움증권 관계자는 "지난 2~3월에는 하루 평균 800개 정도 신규 계좌가 개설됐는데 지난주는 1400~1500개로 두 배 정도 늘었다"며 "이런 추세라면 이달엔 20만계좌를 거뜬히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계좌로 들어온 돈은 실제 주식거래에 활발하게 투입되고 있다. 계좌 자산이 10만원을 넘고 최근 6개월간 1회 이상 주문이 나온 활동계좌 수는 이달 들어 1거래일당 1만개꼴인 10만3912개나 증가했다. 지난 3월 전체 증가분(5만1140개)의 2배를 웃도는 것으로, 최근 증시 상승으로 잠자고 있던 계좌들까지 깨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주식 '왕초보'들이 증시에 들어오고 있다. 키움증권이 자체 조사한 결과 이달 들어 12만개 계좌를 새롭게 연 고객 중 70%는 주식투자 경험이 전무한 초보 투자자들로 파악됐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