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Sun)'은 '빅블루(IBM)' 대신 '신탁(Oracle)'의 품에 안겼다.

세계 최대 기업용 컴퓨터 소프트웨어업체인 오라클이 서버업체인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74억달러(주당 9.5달러)에 인수했다. 그동안 썬마이크로에 눈독을 들여온 IBM이 머뭇거리는 사이 오라클이 재빨리 낚아챈 것이다. 오라클의 썬마이크로 인수는 정보기술(IT) 업계 판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오라클,전방위 IT업체로 변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피플소프트와 BEA 등 기업용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업체들을 인수하며 성장해온 오라클은 이번에 하드웨어업체인 썬마이크로를 사들이면서 '전방위 IT시스템 공급업자'로 변신을 가속화할 수 있게 됐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CEO)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서버)가 완전하게 결합된 시스템을 팔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업체인 오라클이 IBM이나 휴렛팩커드(HP) 등 대형 IT업체들과 보다 직접적인 경쟁자 위치에 서게 됐다는 뜻이다. 오라클은 썬마이크로 인수로 처음 1년간 영업이익이 15억달러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썬마이크로는 오랜 경쟁자였던 IBM 대신 끈끈한 공생 관계를 유지해온 오라클을 택했다. 두 회사는 그동안 썬마이크로의 서버에 오라클의 데이터베이스(DB)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협력해왔다.

2000년대 초 기술력을 앞세워 서버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썬마이크로는 닷컴 버블이 꺼진 이후 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특히 최근 3분기 동안엔 잇따라 적자를 내며 재정 상태가 크게 악화됐다. IBM HP 델 등 대형 업체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서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타 업체로의 인수 · 합병(M&A)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썬마이크로는 최근까지 IBM과 M&A 협상을 벌여왔다.

그러나 IBM이 썬마이크로를 사들일 경우 반독점 논란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와 인수 가격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협상이 지지부진해졌고 그 틈에 오라클이 끼어들었다. 월지에 따르면 썬마이크로는 IBM에 반독점 이슈가 제기되더라도 M&A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해달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바'확보…SW업계에도 영향

오라클은 이번 M&A로 썬마이크로가 갖고 있는 자바 프로그래밍 기술에 대한 주도권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자바는 웹사이트와 휴대폰용 소프트웨어 등을 만드는 데 널리 사용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로,마이크로소프트(MS)에 대항하는 진영의 핵심 자원으로 활용돼왔다.

오라클이 썬마이크로를 사들인 일차적인 이유가 자바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쟁사인 IBM이 썬마이크로를 인수해 자바를 통제하는 위험성을 차단하는 한편 자바를 통해 좀 더 많은 수익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썬마이크로가 오라클 쪽으로 기운 것도 자바를 좀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점이 고려됐다는 해석이다.

한편 이날 오라클의 썬마이크로 인수뿐 아니라 △영국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미국 피부의약품 전문업체 슈티펠 래보라토리즈 인수(36억달러) △펩시코의 2대 계열 보틀링업체 인수(60억달러) 등 총 10건,270억달러에 달하는 M&A 거래가 발표됐다. 금융계에선 이 같은 대형 M&A 성사가 시장 여건 개선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