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관투자가인 투신이 몸을 사리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1300선을 넘기 시작한 지난 7일부터 11일째 3조원 가까운 주식을 순매도했다.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환매가 나타나고 있는 데다 지난 3월 이후 지수가 30%가량 급등한 데 따라 차익 실현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추가 상승 여력은 있지만 단기간에 가파르게 오른 만큼 당분간 쉬어갈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여기에 연기금이 1200선 위에서 매도에 나서면서 수급이 악화되고 있는 점도 의식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주식형펀드 순유출 기조가 멈추지 않는 한 투신이나 연기금 모두 차익 실현 성격이 강해 1300선 위에서는 매도 우위를 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연기금은 1200 넘자 연일 '팔자'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기관 순매도는 투신과 연기금이 주도하고 있다. 투신은 이날 781억원어치를 순매도한 것을 포함해 7일부터 11일째 '팔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이 기간 순매도 규모는 3조원을 넘어섰다.

1분기 어닝 쇼크 수준의 실적을 내놓은 포스코를 가장 많은 2706억원어치 순매도했으며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삼성전자 현대차 KT GS건설 삼성물산 신세계 등에 대해서도 1000억원 넘는 매물을 쏟아냈다.

투신은 지난달 2일부터 6일까지 1조2294억원어치를 사들이며 외국인(2조4505억원)과 함께 코스피지수를 300포인트 넘게 끌어올린 주역이지만 지수가 1300선을 넘어서자 매도 우위로 돌변했다.

연기금은 투신보다 한발 앞서 팔기 시작했다. 연기금은 지수가 1200선을 넘어선 지난달 24일부터 1조6021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21거래일 중 이틀만 빼곤 줄곧 팔았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지수 1200선을 넘으면서 국민연금이 자체 운용하는 고유계정에서 1조원가량을 판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규정상 운용 상황을 밝힐 수는 없다"는 입장이지만,국민연금의 거래 현황은 투자자별 매매 동향으로 거의 파악된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주가 조정 의식해 보수적 운용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들은 "추가 상승 여력은 있지만 조정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주식형펀드의 환매 신청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는 주식을 팔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파트장은 "2006년 가입한 주식형펀드는 본전 근처에 와 있어 환매 욕구가 높아질 시점"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가 6개월 만에 1300선에 안착한 다음날인 8일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238억원이 순유출된 데 이어 전날까지 9거래일 중 8거래 동안 자금이 유출됐다. 이 기간 순유출 규모는 7281억원에 달했다. 국내 주식형펀드에 1조3800억원이 새로 들어왔지만 2조1081억원이 출금됐기 때문이다. 양정원 삼성투신 주식운용본부장은 "투신은 기본적으로 펀드 자금 유출 · 입에 연동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투신 순매도 규모는 펀드 자금 순유출 금액을 크게 웃돌고 있어 차익 실현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강신우 한국투신운용 부사장은 "펀드 환매가 꾸준히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치상으로 보면 별로 크지 않다"며 "외국인이 얼마나 더 살지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차익을 실현하면서 보수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기봉 유진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도 "단기적으로 1350선에 육박하면서 많이 오른 종목은 일단 차익을 실현하고 보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팔자' 행진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국민연금 자금을 위탁 운용하고 있는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지난 16일 국민연금이 위탁 운용 펀드의 주식 비중 하한선을 95%에서 90%로 낮춘 것을 대부분 주식 비중을 줄이라는 암묵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연기금이 주식 비중을 줄이고 있고 펀드에서도 환매가 잇따르면 수급은 빠듯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연기금은 지난해 10월 이후 4조3000억원어치를 순매수한 후 1200선 위에서 1조6000억원어치만 순매도한 상태여서 추가적으로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